미술 교사라는 지구 안에서 래퍼 '째파이'라는 생명체가 태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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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사의 이중 생활 이야기,
불광중학교 박지연 선생님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퇴근 후에는 래퍼 ‘째파이’로 무대에 오른다.
박지연 선생님은 미술 교사와 래퍼라는
두 역할을 오가며 자신만의 감각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미술실에서는 학생들과 살아 있는 감각을 나누고,
무대 위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사람.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 사진 김형국 · 이원석
| 인터뷰 진행 · 에디터 황유진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불광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박지연입니다. 퇴근 후에는 거의 음악 작업이나 창작 작업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이런저런 취미가 많았는데, 음악을 만나고 나서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음악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음악, 특히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대학생 때 재즈 힙합을 정말 좋아했어요. 《쇼미더머니》가 유행하기 전부터 랩 영상이나 프리스타일 문화를 찾아보면서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친구 따라 밴드 커뮤니티에 들어가면서부터였어요. 공연 끝나고 무대 위 제 모습을 다시 보는데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음악 활동을 이어 가다가 지금의 래퍼 ‘째파이’가 되었어요.
《쇼미더머니》로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이 되셨잖아요. 아마 2022년에 방영된 시즌 11이었죠? 예선에서 선생님이 대파를 들고 랩을 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큰 화제가 됐었어요. 저에게도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사실 약간 충격적이기도 했죠. (웃음) 《쇼미더머니》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되신 건지 정말 궁금합니다.
사실 친구가 나간다고 해서 따라 지원했어요. 유명한 래퍼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약간 구경 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지원해 놓고 나니까 좀 진지해지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창피하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요. 그래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를 제일 나답게 보여 주는 게 뭘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예전에 밴드 공연할 때 흑염룡이 그려진 옷을 입고 무대에 선 적이 있었어요. 좀 엉뚱해 보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그런 감각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가다 보니까 결국 ‘흑염룡파’ 같은 콘셉트가 탄생했어요. 그리고 친구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려면 대파라도 들고 나가라.”라고 장난처럼 이야기했는데, 좋은 아이디어다 싶어서 진짜 대파를 들고 나갔죠. 그러다 보니까 ‘흑염룡파’, 즉 ‘블랙파이어드래곤 그린어니언’ 같은 캐릭터가 나오게 됐어요. (웃음)



학생들이 선생님의 음악 활동을 굉장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은데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학생들은 진짜 너무 좋아해요. 특히 《쇼미더머니》를 본 학생들이 제가 지나가기만 하면 저를 둘러싸고 “블랙파이어드래곤 그린어니언!” 하고 외치기도 했어요.
‘TV에 5초 나온 게 학교에서 1년 동안 지도한 것보다 효과가 좋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죠.
《쇼미더머니》 이후에, 일상에서 달라진 점도 있었나요?
사실 저는 친구 따라서 지원서를 냈고, 가사도 집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썼잖아요? 그런데 그게 방송을 타고 학생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니까, 너무 비현실적이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더 신기했던 건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아이들이 묘하게 제 말을 더 잘 듣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그게 꼭 방송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때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이들한테도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졸업한 학생 중에는 “선생님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 준 친구도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가능성의 존재’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쇼미더머니》 이후에는 학생들과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도 훨씬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미술 시간에 아이들과 추천곡을 나누고, 같이 음악 들으면서 그림 그리고, 서로 좋아하는 래퍼 이야기도 하고… 이런 일상이 너무 재밌어요. 이 과정에서 영감도 많이 받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Jazzphai(째파이)’라는 랩네임도 더 멋지게 들리는데요. 이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재즈(Jazz)’,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estus)’를 결합한 단어예요. 이름을 짓던 당시에 제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꽂혀 있었거든요. (웃음)
사실 제가 재즈만 하는 건 아니고 장르를 다양하게 넘나드는 편이라, ‘째파이’라는 이름이 제 음악 스타일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저는 논리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보다 의식의 흐름처럼 자유롭게 흘러가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이름도 그냥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째파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랩네임이라기보다 선생님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술 교사 박지연’과 ‘래퍼 Jazzphai’, 두 정체성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미술 교사’는 마치 지구 같은 존재입니다. 지구에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물, 흙, 산소가 있어요. 둥글고 또 안전하죠. ‘래퍼 째파이’는 바로 그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예요. 저는 그 생명체를 열심히 키워 나가고 있는 중이고요.
짧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저의 두 정체성인 미술 교사와 래퍼는 공생 관계에 가깝죠. 학교 밖에서 째파이로 살아가면서 창조의 감각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미술 교사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점은 한 자아가 상처를 받을 때 다른 자아에게서 치유를 받기도 한다는 거예요.
‘공생 관계’라는 표현이 인상 깊네요. 그럼 미술 교사로서, 래퍼로서의 시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실에서의 시간과 무대에서의 시간은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미술실도 결국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해요. 여러 시선이 동시에 저를 보고 있는 공간이잖아요. 두 곳에서의 시간 모두 저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줘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들, 무대에서 관객이 나와 같이 움직이며 하나가 되는 순간들, 이런 교감이 일어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만 두 공간에서 제가 맡는 역할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미술실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창작하는 시간이 중심이 되도록 돕고, 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무대는 제가 스스로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공간이에요. 랩 공연에서는 자아를 숨기지 않고 표현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두 공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미술실에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쌓아 가며 관계를 만들어 가고, 무대에서는 저 자신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법을 배우는 거죠.
지금처럼 미술 교사와 래퍼, 두 역할을 함께 이어 오면서 고민이나 갈등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학교는 기본적으로 규칙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간이잖아요. 반면 힙합이나 예술은 정해진 틀을 깨려고 하는 문화예요. 이 둘 사이에서 괴리감을 종종 느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욕설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요. 그런데 래퍼 친구들은 가사 안에서 욕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사용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혼자 아이러니를 느낀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괜히 욕 안 하는 래퍼들이랑 더 친하게 지내게 되더라고요. (웃음)
랩을 한다고 제가 규칙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규칙에도 의미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규칙을 알아야 깨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도 있어요. 공연을 한다고 하면 “학교가 이렇게 바쁜데 무슨 공연을 하느냐”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에서 제 음악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밖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즐겁게 랩, 음악 이야기를 꺼내는데 말이죠. 학교 안에서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자아로 행동하는 느낌이랄까요?


선생님의 미술 수업 분위기도 궁금해요. 수업을 설계하실 때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단 수업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선해야 하고요. 중요한 건 미술 수업이 단순히 결과물 하나를 만드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미술 수업을 통해 앞으로의 삶에 필요한 감각이나 안목을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
“아, 이런 게 멋일 수도 있구나”,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같은 거요.
그리고 저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어요. 바로 “이 수업을 나도 듣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에요.
제가 들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고, 저도 자연스럽게 창작 활동을 해 보고 싶어지는 그런 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게도 재미없는 걸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학교 담장을 따라 이어진 학생들의 그래피티 작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수업도 정말 재미있게 하셨을 것 같아요.
재미있기도 했지만 사실 정말 힘든 작업이었어요. 저는 원래 홍대 거리에 다니면서 그래피티 보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학교를 옮긴 첫해에 교장 선생님께서 저에게 벽화 작업을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래피티를 한번 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하지만 막상 수업을 하고 나서, 이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죠. 학교 담장에 직접 그래피티를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응원보다는 걱정하는 시선이 더 많았거든요.
저는 원래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나는 사람인데, 응원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듣다 보니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작업 기간 내내 마음 한편에 큰 짐이 있었고, 그만큼 저도 모르게 많이 예민해졌던 것 같아요.
긴 겨울을 지나 우여곡절 끝에 작품이 완성이 됐어요.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자신들이 완성한 그래피티를 보면서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까 정말 뿌듯했죠.

박지연 선생님의 미술실. 학생들의 작품과 수업의 흔적,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미술실 곳곳을 채우고 있다.

학교라는 큰 도화지 위에 작업한다는 게 정말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감각을 얻어 가길 바라셨나요?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정작 삶에서 중요한 많은 것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교사가 된다면 ‘살아 있는 지식’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피티는 어디서 쉽게 배울 수 있는 문화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살아서 숨 쉬고 있어요. 그래서 그래피티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이 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를 바랐어요. 멋이 뭔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뭔지, 같이 살아간다는 게 뭔지 같은 것들이요.
수업하다가 아이들이 “선생님, 어제 버스 타고 가다가 선생님이 미술 수업 시간에 이야기해 준 그래피티 작품 봤어요.” 같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 좋았어요. “아, 이게 진짜 살아 있는 문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피티 외에도 학교 계단 벽면을 가득 채운 타이포그래피 작업도 멋져요. 학교 전체가 아이들의 작업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타이포그래피 작업도 그래피티 벽화를 좋게 봐 주신 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영어 그래피티 작업은 많지만 우리말로 된 그래피티 작업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말로 충분히 멋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타이포그래피 작업으로 이어지게 됐죠.


래퍼 그리고 미술 교사로서의 이야기를 모두 듣다 보니, 선생님이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선생님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교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하나의 정답 같은 모습을 요구할 때가 있지만, 사실 학생들도 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빛나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저 스스로를 계속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흔들리고 싶지는 않고요. 결국 지금의 나에게는 지금의 내가 정답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답을 알려 주는 교사보다 학생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는 교사로 남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고 있는 동료 미술 선생님들께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음속에 하고 싶은 것이 계속 맴돈다면 한 번쯤은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음악을 안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스스로를 모르고, 덜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할 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것이 꼭 음악이나 랩이 아니어도 되죠. 그림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고, 글쓰기일 수도 있고요.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큰 축복이에요. 하고 싶은 걸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전국 모든 미술 선생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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