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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가정에서의 육아, 취미, 여행 등 미술 교사들의 일상적 관심사에 대해 다룹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 아이를 키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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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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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사와 엄마, 두 가지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워킹맘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출산과 육아가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파동을 새롭게 일깨웠다고 말한다. 

미술이라는 언어로 삶을 마주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아이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교육자이자 엄마’라는 특별한 자리가 만들어 내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 인터뷰 진행·에디터 황유진

| 사진 이영근

| 인터뷰어 강경민(봉은중학교 교사), 박보용(개원중학교 교사), 이민선(역삼중학교 교사)


안녕하세요. 미술 교사이자 엄마로서 멋진 삶을 살고 계신 세 분 선생님을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이민선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이민선입니다. 역삼중학교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는 자율 연수 휴직 중입니다. 미술 선생님은 학교마다 몇 명 없어 미술 선생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박보용  반갑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보용입니다. 개원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파견 교사로 근무 중입니다.


강경민  안녕하세요. 저는 7살 딸과 5살 아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강경민입니다. 현재 봉은중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며, 학교에서 2, 3학년을 대상으로 미술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금방 친해진다고 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오늘은 자녀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자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미리 준비해 주십사 부탁드렸었는데요, 각자 준비해 오신 물건은 어떤 건지, 그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강경민  저는 종이 인형 꾸러미를 가지고 왔어요. 저를 닮아서 그런지 평소에도 딸이 그림 그리기와 색칠하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평소에 제가 바쁠 때는 딸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아이의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키워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언제부턴가는 그리고 색칠하는 활동으로 끝내지 않고, 그림을 활용하여 역할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민선  와, 정말 잘 만들었네요. 다 아이가 그린 건가요?


강경민  딸이 직접 그리기도 하고 제가 스케치를 해 주면 딸이 색칠해서 완성하기도 해요.


박보용  종이 인형을 들고 “안녕~ 난 누구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강경민  네, 맞아요. 우리 아이가 엄마와 상호 작용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요. 딸과 역할을 나눠 연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감정 공유가 돼요. 역할놀이를 통해 평소 아이의 생각이나 경험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죠. 이 종이 인형들은 저와 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통의 도구예요.


이민선  저는 아이들의 그림을 가지고 왔어요. 이 그림은 미술을 배우고 있는 첫째 딸이 그린 거예요. 사실 제가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아이에게 미술을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강경민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이민선  제가 너무 어릴 때부터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탐색해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경험해 나가기를 바랐죠. 


박보용  이 그림은 몇 살 때 그린 거예요? 너무 잘 그렸어요. 


이민선  이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린 거예요. 이 닭 그림을 보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결국 미술을 시키게 됐죠. ‘아, 이 섬세한 붓터치!’ 하면서요. (웃음) 기왕 미술 교육을 시킬 거면 조금 더 빨리 시켰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있네요. 어쩔 수 없는 입시의 굴레 때문에…… 사실 오늘도 열심히 아이 연필 깎아 주다가 왔어요. 우리 엄마는 나 미대 갈 때 연필 안 깎아 줬던 것 같은데 난 왜 깎아 주고 있는지 참…… (웃음) 


박보용  근데 아이가 좋아하는 건 계속하게 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육아를 할 때 딸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제일 흥미롭고 즐거웠어요. 아이가 7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꼭 하루에 한 권씩은 책을 읽어 줬거든요. 그래서 오늘 그림책을 가지고 왔어요. 


강경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셨군요. 매일 책을 읽어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세요. 


박보용  그래서 규칙을 정했어요. 딱 하루에 한 권만! 그래도 고단하긴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딸과 제가 모두 성장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그림책은 아이뿐 아니라 저에게도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글이 없는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어요. 그림책에서 다양한 표현 기법이나 철학적인 사유를 얻기도 했고 미술 수업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했죠. 


이민선  맞아요. 중학교 수업 시간에 그림책을 활용하면 아이들이 너무나 재미있어하죠. 


박보용  아이와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놀았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번 인터뷰 기회로 소중했던 옛 기억들이 다시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어요. 이제는 제 딸아이와 같은 책을 읽지는 않아요. 동네 도서관에 같이 가도 각자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죠. 함께 책을 읽던 때는 지났지만, 책은 여전히 아이와 저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가 되고 있어요. 벌써 6학년이라니…… 훌쩍 커 버렸죠.


자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분위기가 한층 편안해진 것 같아요. 이제 미술 교사인 엄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결혼’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 볼까요?


박보용  저는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겨서 신혼 생활을 즐기지 못했어요. 바로 육아 모드에 돌입해야 했죠. 입덧이 너무 심해서 임신 중기까지는 몸무게가 줄어들었을 정도였어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신혼 기간에 임신으로 인한 변화까지 감내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알찬 준비를 하며 보냈어요. 출산과 육아도 ‘학습’으로 준비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시간이었어요. 정말 희망이 충만한 시간이었네요. (웃음)


이민선  생각해 보면 결혼보다 출산이 우리를 더 달라지게 한 것 같아요. 출산을 하고 나니까 결혼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시작한 소꿉장난 같은 느낌이었죠. 출산 전에는 제가 너무 어리숙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제 인생에 깊이가 생겼어요.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어쩌면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은 기쁨과 좌절도 경험하게 되었죠.


강경민  저 또한 결혼이 제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었다고 느끼진 않아요. 하지만 두 아이의 출산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어요. 육아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고칠 점이 많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됐죠.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족한 내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때처럼요. 그때마다 나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꽤 힘들었어요.


결혼이 아니라 출산이 선생님들을 달라지게 했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구체적으로 출산 전후로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박보용  출산 직후를 떠올려 보면, 초보 엄마였던 저는 아이와 갈등이 많았어요. 한 아이의 엄마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잃고 싶지는 않았어요. 당연한 듯 저에게 돌아오는 육아의 과업이 억울하기도 했어요. 회사원인 남편은 늘 퇴근이 저보다 늦었거든요. 제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니까요. 이게 맞나 싶으면 아니고, 저건 아닌가 싶으면 또 맞고……. 좌충우돌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 버렸어요.


이민선  맞아요.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죠. 크게 달라진 점을 하나 꼽아 보자면,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의 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나의 아이’를 돌보는 일로 옮겨 간 것 같아요.


강경민  일하는 엄마는 혼자서 온전히 아이를 돌보기가 힘들어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등 주변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죠. 


이민선  공감해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강경민  출산 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아이를 위해 양보하고 감내하는 것이 많아졌어요. 육아는 내려놓음의 연속이에요.


이민선  저도 많이 내려놓았어요. 예를 들면, 초콜릿을 안 먹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걸 지켜봐야 하고, 유튜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지만 막을 수만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죠.


내 아이가 생기고 나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도 조금은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박보용  음, 예전에는 예술의 당위성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부모가 되고 보니 입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제 욕심을 내려놓고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강경민  저도 육아를 통해 학교에서 마주하는 학생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성장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이전보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나 자세가 좀 더 너그러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 수업 시간에도 학생 개개인의 특성, 특기를 많이 고려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이민선  저는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삶에서 미술이 정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와 보니 학생들은 우리를 ‘미술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님인데 미술을 조금 아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미술 교육’보다는 ‘삶 자체를 위한 교육’에, 또 ‘교육’보다는 ‘사람’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박보용 맞아요.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게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덜 가르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학생들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의미죠. 미술 수업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작품을 내면화하면서 자기 삶이 변화했음을 느끼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거죠.


15f0898e3d37bf90431b63f58e714eed_1751708963_39.jpg세 사람이 각자의 아이들과 나눈 소중한 추억들

육아와 학교 일을 같이하면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시간 관리나 체력 관리 등은 어떻게 하시나요?


강경민  일이든 육아든 체력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평소에 운동으로 심장을 단련시키면 화나거나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감정 조절을 좀 더 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출근 전에 30분이라도 유산소 운동을 하려고 하는 편이고, 주말에도 필라테스를 하며 체력 관리를 해요. 더 많은 일을 해내려면 결국 체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운동을 하면 실제로 퇴근 후에도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게 돼요. (웃음)


박보용  체력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건강 보조제를 활용하거나 매사에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워킹맘에게 체력 관리만큼 멘털 관리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민선  아! 정신 건강 관리, 정말 중요하죠. 선생님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박보용  저는 요즘 만나는 모든 사람을 측은하게 바라봐요. 자연스레 그렇게 돼 버렸죠. 이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 주시고 촬영해 주시는 분들을 이렇게 바라보는 거예요. ‘너무 고생하신다. 정말 힘드시겠다.’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 보는 거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요. 누구나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데 애를 쓰잖아요. 그래서 생을 살아가는 누구든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고 싶어요.


이민선  저는 정말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휴직을 반복하게 됐어요. 그나마 이 시간 동안 체력을 보강할 수 있었어요. 휴직 기간 동안에는 필라테스, 헬스 등 여러 운동을 합니다. 물론 복직하면 그 에너지는 다시 고갈되죠. 그 패턴을 반복하는 중이에요.


선생님들의 상황에 따라 휴직도 정말 필요하겠네요. 육아휴직이나 자녀돌봄 휴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제도는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강경민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휴직을 다 쓰기보다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도 쓸 수 있도록 남겨 두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민선  맞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로서 돌봐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많아요. 


강경민  유치원 같은 경우는 3~4시까지 돌봄이 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은 12시~1시에 끝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를 돌봐야 할 절대적인 시간은 늘어나요. 그 시기에 부모가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면 초등학생 자녀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이민선  그래서 나중을 위해 육아휴직을 1년 정도 남겨 놓는 것을 추천해요. 특히 초등학교 1학년짜리 어린아이를 계속 학원에만 묶어 두기는 힘들거든요. 차라리 휴직을 해서라도 아이와 함께 있어 주는 편이 낫다고 봐요.


강경민  육아시간 제도도 점점 변화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육아시간 사용 기간이 한 자녀당 최대 24개월이었는데 작년부터 36개월로 늘어났어요. 또 예전에는 육아시간을 한 달에 단 하루만 써도 ‘1개월 사용’으로 계산됐는데 요즘은 사용한 일수만큼만 차감되기 때문에, 훨씬 유연하게 쓸 수 있어요. 제도도 점점 더 좋은 쪽으로 개선되는 것 같아요. 이민선 좋아졌네요.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자녀돌봄 휴가 제도도 알차게 써야 해요. 


박보용  자녀돌봄 휴가도 시간 단위로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예전에는 쓰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이 제도를 활용해 자녀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웬만하면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강경민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갈수록 자녀돌봄 휴가 말고는 변변히 쓸 수 있는 게 없어요.


이민선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들이 초등학교 1~3학년만 지나도 훌쩍 커 가는 게 느껴져요. 자신만의 사회가 생기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요구도 생기더라고요. 친구들이랑 편의점에 가서 끼니를 해결한다든지,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래서 아이가 커 가면 제도적인 도움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키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육아 선배님들의 지혜가 엿보이네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고민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선생님들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강경민  저는 요즘 ‘언제까지 미술 교사로서, 평교사로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미술과가 타 교과보다 상대적으로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사실 그렇진 않으니까요.


박보용  저도 최근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때가 되면 명퇴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이민선  그럼 명퇴를 하고 나서는 계획이 있는 거예요?


박보용  그냥 막연하게 하는 생각이에요. 계획은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그런 계획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어요. 담임과 수업을 병행하고, 육아까지 하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민선  맞아요. 이전의 삶을 반추해 볼 겨를도 없이 한 해가 휙 지나가 버리고 또 다른 학기가 찾아와요.


강경민  얼마 전에 친한 선생님들과 만났는데, 그중에 명퇴하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어느 선생님께서 장학사를 고민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좋을지에 대해 명쾌하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가끔은 선배 미술 교사의 조언이 절실하기도 해요. 


박보용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미술 선생님이 있으면 정말 좋죠. 학교에는 교사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그래서 고민이 더 깊어져요.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호봉은 오르는데 내가 그 호봉만큼 쓰임을 다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고요.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강경민  그런 생각을 하세요? 전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되게 훌륭하게 느껴져요.


이민선  맞아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박보용  요즘 새롭게 임용되어 오는 젊은 선생님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저와 너무 다른 것 같거든요.


이민선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박보용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제가 교직을 처음 시작했던 때에는 교사들이 그렇게 치열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고 학교에 돌아와 보니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이민선  아, 육아휴직 했다가 복직하면 그런 느낌이 있긴 해요. 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면 변화를 잘 못 느껴요. 하지만 오랜 기간 학교를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그동안의 작은 변화들을 한꺼번에 인식하게 되죠. 학교의 분위기, 업무 환경, 구성원들의 마인드 등 다방면에서 학교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박보용  네, 에듀테크를 비롯해서 학교 내외의 연수, 장학 활동 등 선생님들의 다양한 배움의 욕구가 분출되고 있었어요. 특히 젊은 선생님들의 업무 능력은 대단히 뛰어난데 급여는 호봉제라 충분한 대우를 못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 교사로서 괜히 미안해지더라고요.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저도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업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강경민  그런 생각들이 파견을 가게 된 계기가 된 거예요?


박보용  계기라면 너무 거창하고, 자연스레 수업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아갈 것이고, 저도 앞으로 살아야 할 교사로서의 삶이 있으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이제 중학생이 될 아이에게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어요.


이민선  근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육아는 끊임없이 아이를 독립시키는 과정이니까 아이는 아이대로 독립하고 엄마도 엄마대로 독립을 하는 거죠.


박보용  맞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끔은 이게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는 건지 아이를 방임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학업 문제든 친구 문제든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기는데 여기에 엄마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는 늘 고민되는 지점이죠. 물론 가장 손쉬운 건 엄마가 직접 개입해서 엄마의 판단대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겠지만 이 방법이 옳다고 할 수는 없죠. 어떤 방법이 아이의 삶을 위해 가장 최선일지는 항상 조심스럽고 고민이 되는 부분이에요. 아이도 스스로 부딪혀 보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이민선  그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가 스무 살, 서른 살이 된다고 해서 끝날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박보용  그래서 그냥 그 안에서도 나 스스로를 위한 만족과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강경민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하고……  서로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죠.

지금 해 주신 말씀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 미술 선생님들께 큰 위로와 공감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전국에 계신 ‘엄마 미술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해 주세요.


박보용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고, 매일매일을 장애물 넘듯이 치열하게 살아 내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들께서 자신을 돌보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돌볼 수 있더라고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하니 선배 선생님께서 ‘무한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 주셨는데, 이 한마디에 힘이 불끈 났습니다. 선생님들도 이 메시지에서 무한한 힘을 얻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강경민  저는 미술을 싫어하는 아이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미술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와도 소통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내 아이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모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소통의 언어를 연구하다 보면, 수업과 육아 모두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다가오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많은 미술 선생님들과 함께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선  아이들 키우는 일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물론 지금도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나의 일과 아이의 상황, 주어진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고민하고 결정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죠. 이 과정에서 나의 삶도, 아이의 삶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조각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 또래의 학생들을 보며 요즘 남다른 짠함을 많이 느낍니다. 이 수많은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기대됩니다. 

전국의 많은 엄마 미술 선생님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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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OYART님의 댓글

JOYART
작성일 25. 07. 10 11:27

반가운 얼굴을 매거진에서 뵈니 너무 좋네요~~
하나 하기도 힘든 일을 모두 멋지게 해내시는 여러분들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아트티쳐 슈퍼워킹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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