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

일상 이야기

가정에서의 육아, 취미, 여행 등 미술 교사들의 일상적 관심사에 대해 다룹니다.

미술 교사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예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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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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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열두 살인 아들 주안이, 아홉 살 딸 하온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미술 교사 김용주. 

미술로 인해 두 아이와 함께하는 그의 삶은 늘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로 가득하다. 미술은 특별한 언어가 되어 

아빠와 두 아이를 이어 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의 꿈은 

조용히 자라는 중이다. 

오늘도 그는 ‘미술 교사’와 ‘아빠’, 두 개의 추가 달린 

저울 위에 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 글  김용주(문일중학교 교사) 

| 에디터  황유진

우리 집은 또 하나의 미술실


저는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사랑스러운 남매의 아빠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도 하나의 미술실이 되었어요. 

거실 한편에는 스케치북과 색연필, 붓과 물감이 늘어져 

있습니다. 주방 테이블에서는 밥이 아닌 컬리그래피가 

완성되기도 하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미술 활동은 집에서도 시도해 보는 편인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따라 해요. 

아직 저학년이라서 그런지 부모와 같이하는 모든 활동을 

다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합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면 제 개인 시간은 없더라고요. 

가끔은 저도 혼자서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웃음)


우리 집 미술실에서는 매일 새로운 프로젝트가 열립니다. 색종이를 오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피규어를 관찰해 스케치하기도 합니다. OHP 필름 위에 캐릭터를 따라 그린 후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기도 하지요. 또 4B 연필과 A4 용지를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프로타주를 시도하고, 수채화의 번지는 효과를 이용해 무지개 색 뱀과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기도 합니다. 

표현 매체로는 사용과 정리가 쉬운 색연필을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 줬습니다. 대신 어린이 색연필이 아닌 풍부한 색을 느낄 수 있는 전문가용 유성 색연필을 사 주었죠. 사실 물감은 벽에 튈 것 같아 못 쓰게 한 것도 있답니다. (미안하다 애들아!)

아이들과 함께한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컬리그래피와 컨투어 드로잉이에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에게 컬리그래피를 시켜 봤더니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멋진 작품을 완성했어요. 

이를 본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흉내쟁이’답게 곧바로 따라 하더군요. 자연스럽게 선의의 경쟁이 펼쳐졌죠. 이 활동은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고, 아이들이 생일카드를 꾸밀 때에도 활용했습니다. 하나의 미술 활동을 계속 확장시켜 나간 거죠.

컨투어 드로잉 후에는 철사로 드로잉을 따라 입체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딸은 저를 모델 삼아 큼지막하게 컨투어 드로잉을 했는데, 제 모습이 약간 못생기게 그려져도 재미있어했어요. 작업의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철사 작업을 어려워하긴 했지만,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방에 작품을 걸어 두고 즐거워하는 딸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제게 고백할 것이 있다고 속삭이더라고요. 집에서는 아빠를 짧은 머리로 그리는데, 학교에서 가족을 그릴 때에는 아빠 머리를 풍성하게 그린다고요. 그리고 멋쩍게 웃으며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제 머리숱이 적은 건 딸아이의 잘못이 아닌걸요. (웃음) 그림 속에서 아빠가 멋지길 바라는 딸의 마음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 작품에 손대고 싶은 유혹을 견디며


부모이자 미술 교사로 살다 보면 가장 큰 유혹의 순간이 있어요. 바로 아이들의 작품에 직접 손대고 싶어지는 때이지요. 몇 년 전, 아내가 관내에서 하는 미술대회 소식을 듣고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에게 참가를 권했습니다. 

미술대회의 주제는 우리 동네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표현하기에는 그리 쉬운 주제는 아니었기에 아내는 내심 제가 아이를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도와주기로 하고, 어떻게 그림을 그릴지에 대해 아이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죠.

아들은 평소에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작품은 만화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매체로는 색연필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지면이 꽤 넓어서 물감을 사용했으면 채색이 더욱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들은 물감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어 색연필로 넓은 종이를 열심히 채웠습니다. 아내는 아들이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제 모습이 불만이었나 봅니다. 아내는 제게 “아빠가 미술 교사면 옆에서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들의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제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그림이 망가질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제출 기한 내에 작품을 완성하였고 제가 직접 구청에 아들의 그림을 제출하러 갔습니다. 저는 중학교 미술 교사인지라 초등학생들의 그림 실력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다른 학생들의 그림 실력은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대회에 몇 명이나 작품을 냈는지도 궁금했고요. 


미술대회에 출품을 했다는 사실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학교 쉬는 시간에 아내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아들이 미술대회에서 1학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처음에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럴 수가, ‘내 아들이 미술 천재인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인가?’ 싶어서요. 그리고 나머지 수상작들을 보곤 더욱 놀랐습니다. 다른 수상작들이 제 아들의 작품보다 그림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생각되었거든요. 하지만 대상 심사평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가장 초등학생 1학년다운 그림이라 대상을 줌.’

이와 비슷한 일은 딸과도 있었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해서 동네에서 야외 미술대회를 개최했는데, 딸이 여기에 참여했어요. 야외 잔디밭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 제출하는 방식이었는데, 대부분은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대회장에 왔더라고요. 아내가 일이 있어서 제가 대신 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저의 숱한 소개팅의 경험(?)과 교사라는 직업 특성으로, 처음 보는 학부모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웃음)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학생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많은 부모님이 아이들 대신 그림을 그려 주고 있었어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외라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는데도, 부모님들이 대신 그려 주고 있었거든요. 저는 딸에게 그림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딸이 저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요. 결과는 우수상이었습니다. 


이날은 귀여운 딸과 단둘이 즐거운 야외 나들이를 해서 기분이 참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녀가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성실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부모로서 참 행복한 경험이기도 했지요. 특히 이날은 아이의 작품에 손대고 싶은 유혹을 참고 아이에게 올바른 태도를 알려 줄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요. 부모가 아이의 삶에 개입하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아이들의 아빠, 아이들의 미술 교사


미술 교사이자 아빠로서의 삶은 늘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때로는 교사로서 때로는 아빠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술 교사 아빠는 왼쪽엔 ‘교사’, 오른쪽엔 ‘부모’라는 두 개의 무거운 추를 들고 있는 저울과 같습니다. 

저는 가정에서의 미술 활동으로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제 저울은 부모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글을 읽는 교사 아빠의 저울은 몇 도 정도 기울어져 있나 궁금합니다. 이 글을 쓰며 문득 가족들은 미술 교사인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제가 미술 교사라서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가족을 직접 그려 주는 점이 좋다고 대답했고, 아내는 제가 가족을 학생처럼 대한다고 웃으며 핀잔을 주었죠. (웃음)

얼마 전, 딸이 제게 뜻밖의 고백을 해 왔어요. “아빠, 나도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왜 미술 교사일까?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딸의 미래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교탁 앞에 서서 학생들을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아이가 크면 어떤 학생이 될까?’ 하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자녀를 둔 많은 선생님들께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딸의 장래 희망을 알게 된 후, 다양한 전시를 보여 주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형 요소와 원리처럼 다소 깊이가 있는 미술 지식도 은근슬쩍 말해 주면서, 아이와 예술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자녀는 좋든 싫든 부모의 행동과 감정을 물려받는다고 하죠. 제 어머니도 중학교 교사셨습니다. 어머니는 가정 교과를 가르치셨는데, 저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수업이나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기억, 어머니께서 일하시던 교무실과 당직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기억들 덕분인지 저는 지금의 길을 선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과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이들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고, 아이들이 미술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배움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도록 돕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삶을 존중해 주고 싶어요.

미술 교사이자 부모로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미술을 나누고 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서 미술을 실천하고 계시겠지요. 저는 그 다양함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계신 미술 선생님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든 미술 선생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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