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교사 익명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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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술 교사들이 모인 익명 오픈 채팅방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이럴 때, 정말 황당해요."
민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일상적이고,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에는 반복되는 순간들.
익명이라는 그늘 아래, 잠시 솔직해진 미술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어 본다.
| 에디터 황유진

기사에 등장하는 대화는 실제 미술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례의 특성상 참여한 선생님들의 이름과 소속은 밝히지 않았으며,
일곱 명의 미술 교사가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소중한 사례를 나누어 주신 익명의 미술 교사 일곱 분께 감사드립니다.
#01 오늘의 황당 ssul
학교 업무
【미술 교사가 학교의 ‘디자인 담당’인가요?】
일러전문가
교내 행사 포스터 맡았습니다. n차 수정 중이에요.. T.T
첨부파일: 최종본_v7_final_진짜최종.ai
ㄴ재료승인대기
파일명에서 고뇌가 느껴져요… 왜 미술 교사면 디자인이 디폴트값일까요? 억울해!
ㄴ포스터요정
행사 포스터 끝. 거기에 졸업 앨범 제작 업무 추가요.
ㄴ환경미화원
교내 전체 공지 게시판도 자동 배정입니다. 계절 바뀌면 게시판도 바뀌어야 한다고요.
ㄴAI도ai파일을알까
힘내세요. 저도 지금 학교에 부임한 첫날 메신저로 학교 로고 ai파일부터 전달받았어요. ㅎㅎ;;;
ㄴ타칭포토샵전문가
“선생님이 포토샵 저보다 잘하잖아요.”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습니다.
정리봇미술 교사의 전문성은 종종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로 단순해지곤 한다.학교에서 미술 교사는 수업을 하는 사람인 동시에 학교의 시각적인 일을 담당하거나 조언해 주는 사람이 된다.포스터와 현수막을 만들고, 로고 파일을 정리하고, 행사 공간을 꾸미는 일까지 자연스럽게 미술 교사의 몫으로 돌아온다.어떤 순간에는 미술 교사인 ‘나’ 스스로도 그 일을 맡기에 가장 적당한 사람이 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알고 있다. 그 많은 디자인 파일들 사이에서도 미술 교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여전히 교실과 미술실 안에 있다는 것을.
【미술 시간에 '철사'가 왜 필요하냐고요?】
재료승인대기
철사로 컨투어드로잉 수업하려고 철사 구매했는데 행정실에서 연락왔어요.
“미술 시간에 철사가 왜 필요해요? 혹시 개인적으로 쓰시려는 거 아니에요?”라고요.
ㄴ중등10년차
아… 그 질문 너무 자주 들어요!
ㄴ환경미화원
저희 학교도 뭔가 독특한 이름의 재료를 시키면 바로 연락 와요!
ㄴ중등10년차
열심히 설명해 드리면 이해하시더라고요.
ㄴ재료승인대기
네, 저도 행정실 가서 5분 동안 철사로 하는 컨투어드로잉 수업에 대해 설명하고 나왔습니다.
ㄴ꿀팁대방출
그래서 저는 요즘 재료 사이트를 두 군데 정도로만 정해서 구매합니다.
행정실에서도 “아, 이 사이트는 미술 재료 파는 곳이구나” 하고 질문을 덜 하시더라고요.
정리봇
미술 수업에는 다양한 재료가 등장한다. 연필과 물감뿐 아니라 철사, 나무, 천 등 표현의 가능성을 넓혀 주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이런 미술 수업을 직접 해 보지 않으면 그 재료들이 왜 필요한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행정실에서 나온 그 질문 역시 미술 재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행정실과 미술실 사이에서 오갔던 대화는 요즘의 미술 수업 재료가 얼마나 다양화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미술에서 매체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매체를 수업으로 가져오고 그 가능성을 학생들과 함께 탐색하는 일.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미술 교사가 있다.
【미술은 시험이 없어서 좋겠다고요?】
시험없어도힘들어요
시험 기간만 되면 꼭 듣는 말. “미술은 지필고사 없어서 좋겠다~”
ㄴ늘수행중
좋…은 건가요…? 전 퇴근길에 수행 평가 채점표 들고 집에 가는데요.
ㄴ시험에들다
어떤 학교는 지필고사 없는 교과에 성과급 관련 점수를 낮게 주기도 한대요.
ㄴ늘수행중
헐 너무해요!
ㄴ시험에들다
그러게요. 시험이 없다기보다는 평가의 방식이 다를 뿐인데 말이죠.
정리봇
미술 수업에는 지필고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생각이 어떤 시도와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이어졌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평가가 이어진다.
미술 교사의 평가는 시험지 위에서 이루어지기보다 학생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평가는 미술실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그 과정을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자. 그 수업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미술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니까.
#02 오늘의 황당 ssul
수업 및 평가
【고3 미술 수업 시간은 자습 시간이 되어야 하나요?】
고3미술담당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미술 지도하고 있는데요, 오늘 수업 열심히 한다고 한 소리 들었어요.
ㄴ고등12년차
엥? 누가요? 열심히 하면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ㄴ고3미술담당
교장 선생님이요. ^^
“애들이 자습 시간 달라는 말 안 해요? 거 수업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이러시던데요.
ㄴ고등12년차
고3 애들 힘든 것도 알고, 수능 공부가 중요한 것도 알겠는데 그렇다고 미술 수업을 안하는 게 맞는 건가요? 정말 딜레마네요.
ㄴ고3미술담당
맞아요. 미술 수업을 하면 눈치가 보이고, 안 하면 또 마음이 걸리고요.
정리봇
고3 교실에서는 종종 이런 말이 오간다.
“애들 공부해야 하니까 미술 시간은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미술 역시 교육과정 안에 있는 정규 수업이다. 어떤 교실에서는 미술 시간이 자습 시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교실에서는 여전히 예술의 씨앗이 움튼다.
수능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기에 미술 교사는 쉽게 단정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시간을 지켜 주어야 할지, 수업의 의미를 지켜야 할지.
그래서 고3 미술 지도를 맡은 선생님들은 오늘도 그 질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찾는다.
【미술 활동이 종교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나요?】
만다라만들라하지마라
조형 수업할 때, 만다라 함부로 활용하지 마세요.
불교 관련된 내용을 왜 미술에서 다루느냐고 학부모님 민원 전화 받았습니다.
ㄴ카드만들기전문
와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연말에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수업했다가 종교색 논란요;;;;
ㄴ난나를믿어요
별게 다 종교 논란이네요...
ㄴ샤르트르
미술사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언급했다가 성당 이미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ㄴ패턴수업중
아라베스크를 활용해서 패턴 디자인 수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종교 논란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맥락 설명을 더 잘해야겠습니다.
정리봇
감상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미술처럼, 미술 활동 역시 그것을 둘러싼 맥락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한편으로 미술 수업이 단순한 만들기 활동을 넘어 역사와 문화, 사회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때로는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에 수업의 맥락이 먼저 이해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든다. 그래도 미술 교사는 오늘도 그 활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차분히 설명해 본다.
【'창의성'의 정의를 설명해 달라고요?】
창의성설명중
선생님들, 학부모님 상담 시간에 이런 말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 작품이 왜 상을 못 받았나요? ‘창의적’이지 않나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창의성’의 정의를 설명해 보세요.”라고.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이런 경우 선생님들은 뭐라고 답하실 건가요?
ㄴ타칭포토샵전문가
창의성에 정답이 있을까요? 저는 잘 그린 건 성실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세가 창의적인 거 아닐까 생각해요.
ㄴ중등10년차
저는 이렇게 말해요. 창의성은 ‘남과 다른 모양’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수업 시간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시각적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과정과 태도’의 문제라고요.
ㄴ샤르트르
“왜 우리 아이는 점수를 덜 받았나요?”라는 질문도 비슷한 거 같아요.
ㄴ창의성설명중
맞아요. 어머니께 평가 기준을 설명드리다가 상담이 어느 순간 평가 설명회로 바뀌더라고요.
정리봇
미술 수업에서 ‘창의성’은 사전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켰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술에서의 평가는 단순히 결과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 학생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어떤 시도와 과정 속에서 작품으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술 교사는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담긴 학생의 생각과 시도를 읽어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03 오늘의 황당 ssul
사적인 부탁
【인테리어 상담이 들어왔습니다!】
타일러
교감 선생님 댁 리모델링하신다는데,,
현관 타일 색이 고민이라고 상담하셔서 제가 타일 색 골라 드렸어요. 타일 장인이 된 기분.
ㄴ인테리어상담중
저도 동료 교사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가게에 칠할 페인트 색 골라 주다가 거의 현장 감독 됐습니다.
ㄴ타일러
“선생님은 미술하시니까 이런 거 잘 아시잖아요.” 이러시니까 또 진지해져요. 이런 내 자신 싫다..☆
ㄴ조명가게
저는 후배 교사 자취방 조명 색 추천해 줬는데, 이젠 조명 브랜드도 잘 모른다고 아예 제품 링크를 보내 달래요. ^^;;; 그의 집인지~ 나의 집인지~
ㄴ평면도그리는중
저는 이사하는 부모님 댁 평면도 그려 놓고 가구 배치까지 해 봐요 ㅎㅎ
부탁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정리봇
미술 교사에게 인테리어 상담과 같은 사적인 부탁은 비단 학교 안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친구가 집 인테리어 색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족의 이사를 앞두고 가구 배치를 함께 고민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미술 교사는 가장 가까운 ‘감각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쩌면 미술 교사들은 누군가의 부탁이 있든 없든, 학교 안이든 밖이든 공간의 분위기와 색,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늘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벽의 색 하나에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가구의 위치 하나에도 사람의 동선과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네? 자녀분 수행 평가 작품을 제가 대신이요?】
수행대신좀
옆자리 선생님께 자녀 수행 평가 작품 좀 대신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난감하네요.
ㄴ아웃오브라인
그건 자녀 교육에도 좋지 않을 거 같은데요! 부탁이 조금 선을 넘은 듯합니다.
ㄴ조형좋아
와,,, 미술 수행 평가는 숙제 같은 게 아닌데요.
미술 수행 평가가 지니는 의미를 잘 모르시는 분이네요.
ㄴ늘수행중
게다가 그 학생 작품을 평가할 동료 미술 교사에게도 정말 못 할 짓이잖아요. ㅠㅠ
ㄴ수행대신좀
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어요. 대신… 옆자리 선생님과는 조금 서먹해졌네요.
정리봇
미술 수행 평가는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가 있다. 학생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스스로 경험해 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대신 만들어 주는 순간 그 활동은 더 이상 수행 평가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 사실을 알기에 이런 부탁을 받는 미술 교사는 더욱 난감해진다.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때때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생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배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호의와 원칙, 그 사이에서 미술 교사는 오늘도 최선의 선택을 한다.
【간단한 그림 하나만 그려 달라고요?】
궁서체로말해요
친한 선생님이 “간단한 그림 하나만요~” 하시는데 대체 간단한 그림이 뭐죠? 전 그림 앞에 늘 진지한데요.
ㄴ화가는화가나
저희 교장 선생님은 이사 갈 집이 썰렁하다고 그림 하나 그려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ㄴ궁서체로말해요
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ㄴ화가는화가나
거절했는데도 끈질기게 요구하셔서 결국 선물해 드렸어요. 선물해 드린 그림이 누드화인 건 안 비밀~
ㄴ궁서체로말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와! 대박!
ㄴ문인화가핫데뷔
저는 교감 선생님이 서예하시는데, 글 옆에 그림 좀 그려 달라고 하셔서 강제로 문인화가 됐습니다~
정리봇
미술 교사에게 “간단한 그림 하나만 그려 달라”는 부탁은 생각보다 자주 들려온다. 하지만 미술 교사에게 그림은 좀처럼 간단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미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부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난감한 순간도 있다. 그래서 미술 교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넘긴다. 때로는 문인화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 밖의 그림 한 장으로 분위기를 위트 있게 바꿔 보기도 한다.
사적인 부탁을 적당한 웃음과 함께 넘기는 일은 비단 미술 교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함께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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