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

일상 이야기

가정에서의 육아, 취미, 여행 등 미술 교사들의 일상적 관심사에 대해 다룹니다.

미술 교사에게도 미술 교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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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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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미술 선생님' 이야기



| 글 어진이(덕원예술고등학교 교사)

       이채명(이포중학교 교사)



| 에디터 이진화




캔버스에 붉은 꽃이 피던 날,

나의 ‘샤갈’이 들려준 사랑의 색채







| 글  어진이(덕원예술고등학교 교사)

오늘도 교단에 서서 아이들의 도화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붓이 물통에 부딪히는 맑은 소리 사이로 아이들의 고민과 설렘이 층층이 쌓여 갑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문득, 제 투박한 손위로 커다란 손을 겹쳐 잡으며 미술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셨던 나의 ‘미술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제자가 자라 어느덧 같은 길을 걷는 미술 교사가 되어, 지금의 시선으로 나의 선생님의 찬란했던 캔버스를 다시 추억해 봅니다.



“올해 말, 아니면 내년 초?” 선생님의 다정한 거짓말


학창 시절,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는 미술 선생님의 ‘장가’였습니다. 당시 조금은 늦은 나이까지 홀로 작업실을 지키시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참 편안한 친구이자 큰 나무 같은 존재였죠. 우리는 캔버스 앞에 앉아 계신 선생님의 등을 향해 짓궂은 질문을 화살처럼 던지곤 했습니다.

“선생님, 장가 언제 가세요? 혹시 여자 친구는 그림 속에만 계신 거 아니에요?”

놀려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선생님은 붓을 멈추고 허허 웃으시며 전매특허 같은 대답을 남기셨습니다.

“올해 말 아니면 늦어도 내년 초에는 꼭 간다!”

하지만 그 ‘내년 초’는 해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좀처럼 오지 않는 마법 같은 약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선생님만의 다정한 거짓말로 치부하며 깔깔거렸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그저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다시 캔버스 속에 침잠하시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넉살 좋은 웃음 뒤에 예술가로서의 고독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조용히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프 향기와 명화 사이, 예술의 온기가 영글던 시간


선생님은 화가로서도, 교육자로서도 늘 진심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실은 은은한 테레빈유 냄새와 함께 선생님이 직접 끓여 주시던 따뜻한 수프 향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배가 불러야 상상력도 나오고 그림도 잘 그린다.”

냄비 가득 끓여 내어 주시던 그 수프 한 그릇. 그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화가의 태도이자 제자를 향한 지극한 환대였습니다. 수프를 먹는 동안 선생님은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 작업실에 명화를 한 작품씩 띄우며, 우리를 미술의 세계로 안내하셨습니다. 칠판 앞에서의 딱딱한 이론 수업이 아니었습니다. 빛의 화가들이 어떻게 어둠을 해석했는지, 고흐의 노란색이 왜 그토록 절절한지를 마치 어제 만난 친구 이야기를 하듯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미술사의 격동기를 거쳐 온 작가들의 고뇌를 들려주시던 그 진지한 눈빛은 제게 그 어떤 교과서보다 완벽한 예술 교육이었습니다.

그때 받은 따스한 온기와 지적 자극은 제가 미술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헤엄쳐 나갈 수 있게 한 가장 단단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무채색 작업실을 뒤흔든 ‘붉은 꽃’의 예보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차분하고 정적인 모노톤의 작업을 즐기시던 선생님의 캔버스에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흙빛과 무거운 공기가 감돌던 화폭 중앙을 압도적으로 채운 것은, 이전에 본 적 없는 강렬하고 뜨거운 ‘붉은 꽃’ 한 송이였습니다. 마치 화가의 심장 박동이 캔버스 위로 고스란히 전이된 듯한 그 생생한 붉은빛.

“선생님, 이 빨간색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제 질문에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붉어진 얼굴로 그저 붓을 휘저으셨습니다. 작업실의 공기 자체가 달라졌음을 어린 저조차 직감할 수 있었던 그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년 ‘내년 초’만 외치시던 선생님은 정말로 아름다운 신부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 붉은 꽃은 선생님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피어났던, 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의 예보였던 셈입니다.



‘사랑의 색’이 삶에 의미를 준다


미술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평생 아내 벨라를 향한 사랑을 화폭에 담으며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나는 연인들을 그렸던 샤갈처럼, 선생님의 캔버스를 물들였던 그 붉은색 역시 샤갈이 말한 ‘사랑의 색’이었을 것입니다. 고독했던 무채색 일상에 사랑이라는 빛이 찾아왔을 때 화가의 화풍이 어떻게 생동하며 극적으로 변하는지, 예술이 삶을 어떻게 축제로 만드는지 선생님은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캔버스 위의 붉은 꽃 한 송이로 제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삶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제가 그 사랑을 전하는 ‘꽃’이 되려 합니다


나의 ‘미술 선생님’은 지금도 예원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이어 가고 계신 윤영섭 선생님입니다. 미술을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교단에 서 있는 지금까지, 선생님은 제가 붓을 놓지 않도록 늘 곁에서 가장 따뜻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보여 주신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람을 향한 온정은, 현재 제가 아이들을 마주하는 가장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이제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명화의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 줄 수프를 끓여 내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캔버스에 피었던 그 붉은 꽃처럼, 저도 아이들의 투박한 도화지 속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사랑의 색’이 피어날 수 있도록 정성껏 가꾸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선생님이 물들여 놓으신 그 붉은 설렘을 기억하며, 아이들의 새하얀 도화지 위에 각자의 진심이 피어날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려 합니다.




나의 첫 번째 피자와

첫 번째 미술 선생님







| 글  이채명(이포중학교 교사)

잊지 못하는 ‘피자’의 기억


조용한 교무실, 내 책상 앞. 갑자기 핸드폰 진동벨이 울립니다. 작게 전화를 받았지만, 해맑은 초등학생 딸의 목소리는 핸드폰 너머 교무실 안까지 환하게 퍼집니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모르겠어. 집밥이지.”

“엄마, 다른 거 먹자.”

“넌 뭐 먹고 싶은데?”

“맛있는 거.”

“맛있는 게 뭔데?”

그러자 딸은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엄마! 나 오늘은 피자 시켜 줘.”

“그래, 알겠어.”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습니다. 피자를 특히 좋아하는 우리 딸. 그 순간, 문득 나의 첫 번째 피자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중학교 2학년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미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학교 대표로 타 지역에서 열리는 미술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미술 선생님의 차를 타고 도착한 첫 외부 미술 대회. 그러나 긴장한 나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우울한 마음으로 대회장을 나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선생님은 대회가 어땠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울지도 못한 채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망쳤어요…. 저 상 못 받을 것 같아요.”

나는 연신 선생님의 기대를 낮추려 했습니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마음 한편엔 아쉬움이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차를 타고 다시 우리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늦게 도착한 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간식을 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시내의 한 식당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언론에 새롭게 소개되며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던 음식, 말로만 듣던 ‘피자’를 시켜 주셨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피자를 처음 마주했습니다. 놀랍고 신기했지만, 티를 내기엔 괜히 부끄러워 태연한 척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음식에 낯가림이라도 한 것인지, 선생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미술 대회가 목에 걸려서인지, 다른 친구들은 맛있게 피자를 먹었지만 나는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피자’라는 음식을 먹었다고, 너무 신기했다고 거짓 자랑을 했었습니다.

나의 미술 세계를 열어 준 선생님


나에게 ‘피자’를 처음 접하게 해 주신 분, 그분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백정희 선생님입니다. 미술을 좋아하던 나는 늘 미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는 음악 선생님이 미술 교과를 담당하셔서 선생님의 별다른 지도가 없었고, 미술 시간에 풍경화와 정물화만 그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미술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미술 선생님이 나의
담임 선생님이라는 점이 더 좋았습니다.
백정희 선생님은 골드미스셨고, 90년대 초중반 당시 쇼트커트(short-cut)에 파란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시던 멋쟁이 선생님이셨습니다. 미술 이론 수업은 물론이고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깊으셨습니다. 그 시절은 아직 무상 교육이 아니어서 학교에 납부해야 할 비용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돈을 대신 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미적 감각뿐 아니라 마음까지 넉넉한 선생님이셨습니다.
〈모나리자〉를 설명하실 때면 직접 같은 표정을 지으며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여 주시던 선생님. 미술 교과서에는 없던 현대 미술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는 호기심 많던 나에게 미술이란 늘 새로움이 숨겨진 ‘보물 상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나는 미술을 좋아했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화실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미술 전공을 권하셨고, 나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처음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화실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내가 처음 다닌 화실의 이름은 ‘반고흐 화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흐는 지금도 내게 친근한 화가입니다.


내 마음속의 파란 스포츠카


나는 가끔 선생님과 함께 미술 공개 수업에 사용할 예시 작품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늘 세련되고 따뜻했던 미술 선생님. 어쩌면 그 선생님의 영향이었는지, 나는 ‘작가’가 아니라 ‘미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선생님의 자동차 색과 닮은 로열블루 색상의 차를 타고 출퇴근합니다. 주변에서는 자동차 색이 너무 튄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참 미술 선생님다운 색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선생님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문득 백정희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나의 첫 번째 미술 선생님.

오늘은 딸과 함께 피자를 시켜 먹으며, 선생님을 가만히 추억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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