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미술실'에서는 예술이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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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예술로 하나되는 미술 수업을 꿈꾼다,
안산 관산중학교 신경아 교사의 미술 수업 이야기
프리즘은 맑고 투명하다. 여기 프리즘 같은 미술 교사가 있다.
투명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무지갯빛으로 펼쳐 낸다.
전교생의 90%가 다문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에서 언어를 뛰어넘는 예술적 소통을 고민하며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미술 교사, 신경아.
다문화 가정 학생의 이해와 소통을 돕는 미술 수업으로 ‘제12회 대한민국 스승상(2023)’을 수상하였고,
서로 다른 문화의 음식을 나누며 마음으로 소통하는 미술 수업 <가족의 식탁>으로
해냄에듀 주최 ‘제2회 올해의 수업 공모전(2024)’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다문화 미술 교육의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국경 없는 미술실’에서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인터뷰 진행 김효희(대안여자중학교 교사)
| 사진 오준성
| 에디터 황유진
김효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대안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효희입니다. 작업실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실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해요.
신경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안산 관산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신경아입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회화와 그림책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저는 예전에 대안여자중학교 옆에 있는 대안중학교에서 근무했어요. (웃음)
김효희 아, 정말요? 저는 안산에 있는 중앙중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계셨군요. (웃음) 선생님께서는 언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나요? 첫 학교에서의 미술 수업 이야기부터 나누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경아 저는 2003년에 교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첫 발령을 받은 곳이 대안중학교였죠. 아시다시피 대안중학교는 남중이고, 미술을 정말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고정 관념을 깨는 수업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수업이 재미있지 않으면 제가 미술 교사로서 그곳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죠. 아이들이 미술을 놀이처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놀이 속에서 뭔가 배운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운동장에 나가서 모래로 무언가를 만든다든지, 퍼포먼스를 한다든지, 연기를 해 본다든지…… 대체로 활동적인 수업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역동적인 수업을 했는데, 다음 발령지에서는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이과 남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김효희 극과 극을 오갔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중학교 남학생들과 고등학교 3학년 이과 남학생들 간의 간극이 클 것 같아요. 그곳에서의 미술 수업은 어떠셨나요?
신경아 첫 수업 날인 3월 2일. 교실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고 다 문제집을 풀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았어요. 그 아이들은 미술 시간이 곧 자습 시간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미술 활동을 하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차단해 버린 것 같았죠.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게 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새로운 마음으로 많은 준비를 했어요.
고3의 경우, 미술 수업이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일반적인 미술 수업과 미대 입시 지도가 필요한 미술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수업이 있죠. 일반적인 미술 수업 시간에는 학업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미술 수업을 많이 했어요. 머리를 비우고 손을 움직이면서 집중할 수 있는 활동들 위주로요. 예를 들어, 모의고사 시험지를 모아서 페이퍼 마쉐 작업을 한다든지, 자수, 젠탱글, 만다라를 활용하기도 했어요. 반면 미대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과는 미술 활동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개인 작품 창작을 지도했고 그 결과물로 교내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었어요.
김효희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관산중에 오신 거군요. 관산중학교는 조금 특별한 학교잖아요.
신경아 네, 맞아요. 관산중학교는 전교생의 90%가 다문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안산의 외국인 밀집 지역에 학교가 있다 보니 학생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이고, 결혼 이민자의 자녀 그리고 난민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김효희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도 많아서 의사소통하는 게 처음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안산에 있을 때, 관산중학교 근무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께서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것을 종종 들었거든요.
신경아 맞아요. 처음에는 언어 장벽을 넘으려면 그 언어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배워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언어가 필요 없는 동영상을 찍기 시작한 거예요. 모든 수업의 재료 준비부터 사용법, 정리 과정까지 단계별로 영상을 만들어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했어요.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가슴속 깊은 이야기와 내면의 열정, 섬세함을 그림으로 풀어내기 시작한 거예요. 예술이 전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미술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죠.


김효희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국경 없는 미술실’ 유튜브 채널에 그러한 영상들이 공개되어 있죠? 저도 인터뷰 오기 전, 그곳에 업로드된 영상들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미술실 공간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신경아 처음 미술실은 거의 창고 같았어요. 버려진 공간에 각종 짐들이 쌓여 있고, 탁구대나 깨진 조명 등이 있는 상태였죠. 그곳에서 미술 수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그 물건들을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교실의 가구가 모자랐지만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돌아다니며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가구들을 가져와 미술실을 세팅하고 어떻게든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불이 꺼진 미술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보였어요. 불안한 마음에 그 아이들을 따라가 보니, 아이들이 불 꺼진 미술실에서 작품을 붙여 놓은 칠판 앞에 앉아 자기 나라말로 그림을 감상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그때부터 저는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미술실의 불을 항상 밝혀 두게 되었죠.
언제든 아이들이 찾아와서 쉴 수 있는 물가 같은 미술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아이들이 언제든 들러 쉬어 갈 수 있는 신경아 선생님의 미술실
김효희 미술실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꾸미는 과정이 유튜브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데, 어떻게 그렇게 미술실을 직접 꾸미게 되셨나요?
신경아 운 좋게도 시에서 특별실 리모델링 예산이 내려왔어요.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 기회를 살려 미술실 리모델링을 시작하게 된 거죠.
사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결혼하면서 얻게 된 전셋집을 적은 돈으로 예쁘게 꾸미기 위해 셀프 페인팅을 하거나 맞춤 가구를 만든 경험이 있거든요. 이런 경험이 미술실 꾸미기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페인트 브랜드와 색상, 레일 조명, 조명의 색온도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리고 관산중학교는 규모가 작고, 선생님들 간의 끈끈한 동료애가 있다 보니 모두 발 벗고 미술실 리모델링을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미술실은 이제 학교 안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미술실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고, 손님이 오면 미술실은 꼭 들러야 할 정도로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신경아 교사 유튜브 채널 <국경 없는 미술실> ☞ 바로가기
김효희 저도 미술실에 꼭 가보고 싶네요. 제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해냄에듀에서 주최한 제2회 올해의 미술 수업 공모전(2024)을 통해서였는데, <가족의 식탁> 수업도 그 미술실에서 이루어진 수업이겠네요. 이 수업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신경아 <가족의 식탁> 수업은 온라인 수업 덕에 우연히 시작했던 수업이에요. 제가 이곳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코로나 시기였고, 온라인 수업과 학교 수업이 병행되던 상황이었어요. 정물화 수업을 해야 했는데, 온라인 수업 중이었기에 아이들에게 냉장고에서 그릴 물건을 하나씩 꺼내 오라고 했죠. 그런데 화면 속 다중의 격자 안에서 전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물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동일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같은 급식을 먹지만, 각자의 집에 가면 전혀 다른 문화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죠. 그 신선한 충격은 수업에 대한 영감으로 이어졌어요. 가족, 문화, 이민자의 삶, 그리고 한국 문화를 다루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문·사회적 지식도 함께 전달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한 것이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가족의 식탁’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해마다 작은 주제를 새로 설정하고, 회화, 조소, 디자인, 감상, 글쓰기 등 다양한 미술의 영역을 골고루 다루도록 설계했습니다. 다문화 거리 식재료 탐방, 장을 본 후 그 음식을 맛보며 그리기, 가족의 식탁 소개하기, 모국의 음식을 초크아트로 표현하기, 모국의 음식을 점토로 표현하기, 전시회 준비, 전시 관람 등 그 안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며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향상시킬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더불어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존중감을 키울 수 있도록 하였죠.
무엇보다 학생들이 다 함께 즐겁고 자유롭게 먹고 나누며, ‘교실이 낯선 나라에서 마음 붙일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다채로운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미술 활동을 통한 자기표현을 진하게 경험하며 단단하게 성장했습니다.




김효희 ‘지금 - 여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수업의 아이디어를 얻고 또 구체화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의 또 다른 수업들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신경아 <너의 이름은! - 문자도로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 수업을 소개하고 싶네요. 이 수업은 아이들의 명렬표를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각자의 고국에서 불리던 이름들, 그 이름 속에 담긴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문자도로 풀어내면, 언어를 넘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그린 문자도를 미술실 칠판에 붙였고, 3학년 수업에서 큰 반응이 일어났어요. 그림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아 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놀라움의 탄성이 이어지기도 했죠.
한국어가 능숙해 한국인인 줄 알았던 친구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거나, 친구의 외모만으로 짐작했던 가족의 뿌리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었어요. 오랜 기간을 알고 지낸 친구였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한 여학생의 그림이 기억에 남아요. 저희 반 아이였는데,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고 성격마저 수줍어 대화가 쉽지 않았던 아이의 그림이었죠. 그림 속에는 남녀가 구름 위에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날개가 달렸고 머리에는 동그란 관을 쓰고 있었어요. 저는 아이에게 말을 붙이려고 다가가 천사를 그린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라고 대답했어요. 저는 아빠의 천사처럼 고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이는 덤덤하게 말했어요.
“아빠 죽었어요.”
저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했습니다.
너무 놀랐지만 애써 말을 이어 가며 그림 속 여자에 대해서도 물었죠. 그림 속 여자는 엄마였어요. 그러고 보니 엄마 뒤에는 커다란 인도네시아 국기가 그려져 있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름 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죠.
You are perfect no matter what.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완벽하단다.)
순간 눈물이 왈칵 터져 저는 마스크를 얼른 눈 밑으로 끌어당겨 올렸어요. 따뜻하고 슬픈 그림을 통해 저는 아이의 깊은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가정 환경 조사서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분명히 쓰여 있어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죠.

김효희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 주셨네요. 그 수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순간에 교사로서의 행복을 느끼시나요?
신경아 질문을 들으니 생각나는 중도 입국 학생(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중도 입국한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있네요. 그 학생은 다른 수업 시간엔 책상에 엎드려 있지만, 미술실에 오면 허리를 곧게 펴고 몰입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이 아이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아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이를 표현하는 순간을 지켜볼 때 미술 교사는 정말 행복한 직업이라고 느껴요.
저는 수업 자체를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수업은 저와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의 작품인 거죠.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성장하기도 하고요.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큰 보람을 주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때에는 미술실에서 가만히 아이들의 작품을 들여다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미술 시간에 집중해서 작품을 밀도 있게 완성해 낸 것들을 보면, 아이들이 그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가 다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하루 종일 미술실에 있으면서 작품의 감동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아요.
김효희 ‘아이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는 수업의 관점을 만들고 교사의 태도를 만드는 기반이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시고 또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시는 게 말씀 속에서 느껴집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미술 교육에서 우리(미술 교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경아 미술 교육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평범한 어른이 되어 가죠. 그런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저는 교육에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은 각자 저마다의 전공이 있고, 그 지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때로는 그 확신이 자칫 아이들의 고유한 개성을 획일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주의해야 해요. 사람들의 지문이 각기 다르듯이 아이들의 예술성도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에요. 다른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나도 이런 미술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다그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하나 알려 주고 칭찬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모든 학생들이 미술 시간마다 한 번씩은 칭찬받을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요. 아이들에게 작은 성취를 이루도록 돕고, 그걸 진심으로 칭찬해 주려고 노력해요. 그 아이에게 그 칭찬은 평생의 선물이 될 수 있거든요. 이런 작은 성공 경험들이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우고, 그것이 결국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김효희 선생님의 교육관을 듣고 있으면 정말 참스승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스승을 위한 상이 있다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미 2023년에 대한민국 스승상을 받으셨더라고요! 상 자랑을 좀 해 주세요. (웃음)
신경아 사실 그때는 이런 상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장장 6개월 동안 추천 교원에 대한 교육 활동 심사를 진행하더라고요. 심사를 통해서 안산시 대표, 경기도 대표를 거쳐 마지막에 교육부 심사까지 받게 되었어요.
교육부 관계자가 오셔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불러 인터뷰를 하셨죠. 제일 먼저 불려 간 분이 저와 함께 미술실을 일군 시설 주무관님이었고, 두 번째는 학교에서 미술 전시를 하면 가장 먼저 와서 관람해 주시는 한국어 선생님이었어요. 그 이외에도 다른 선생님들, 학생들, 학부모님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터뷰의 대상이었죠.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교육부 관계자분께서 웃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셨어요?”라고 물으셨어요. 인터뷰에 참여해 주셨던 분들이 좋게 말씀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상을 받게 되었어요.
시상식에 갔는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에 비해 저는 수도권 변방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그 평범한 사람을 동료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무대로 끌어올려 줘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거죠. 참 감사하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효희 선생님께서는 학교 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주시고, 학교의 문화를 바꿔 놓은 대단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는 작가로서의 선생님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작가명으로 ‘아이보리얀’을 쓰시는데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신경아 아이보리얀은 아이보리색 털실을 의미해요. 따뜻한 위로와 평안을 드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작가명이죠. 교사로서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교사의 삶을 작가의 삶과 분리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 본명은 맨날 시험지 OMR 카드에 사인하는 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에요. (웃음)

김효희 ‘아이보리얀’이라는 이름 안에 작가로서의 선생님이 지향하시는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미술 교사는 누구나 예술가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생활 지도와 각종 행정 업무를 병행하는 교사로서 때로는 엄마(아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놓지 않고 끌고 가시는 걸까요? 또 그 용기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신경아 저도 미대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교사로 살고 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과 멀어지게 됐어요. 근데 예술가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 그림을 못 그리면 시름시름 앓게 돼요. 물론 엄마로서 교사로서 아내로서 성취하는 것들이 있고 그에 대한 기쁨도 느끼지만 예술가로서의 나는 시들어 가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인생을 바꾼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외할아버지께서 암 선고를 받으셨고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외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제게 “그림 그리고 있니?” 하고 물어보셨어요. 추석과 설날, 일 년에 딱 두 번 뵙는데 그때마다 물어보셨고 저는 늘 “아니요.”, “저 못 그려요.”, “힘들어요.”, “바빠요.”라고 말씀을 드렸죠. 암 선고 이후, 외할아버지께서 저를 불러 “그림을 그려라.”라고 다시금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덧붙이셨던 말씀이 “욕심을 내지 말아라. 네 욕심 때문에 못 하는 거다. 1년에 한 개씩만 그려라. 그러면 10년이면 10개다. 너 그때 50세도 안 됐어.”라고요.
그 말씀이 제게 크게 와닿았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뭐라도 그려서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림 그리는 법을 다 잊은 거예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홍대 앞에 가서 한국화 화실을 등록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서양화 전공인데 예전부터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거든요. 어차피 다시 시작하는 거면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간신히 작품 2개를 완성해서 외할아버지께 보여드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어설픈 듯한 한국화 모작을 보여드렸는데 막 우시는 거예요. “잘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렇게 외할아버지의 말씀 덕에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친구들과 은사님, 남편 등 제게 그림을 계속 그리라고 용기를 준 사람들도 있었고요.


김효희 2023년에는 첫 그림책인 《여름비》를 출간하셨어요.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림책을 출간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신경아 2020년에 여름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계절의 분위기를 담고 싶어서 여름 풍경을 많이 그려 전시했었는데, 그 그림들을 본 분들이 동화적이고 따뜻한 인상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림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주셨죠. 그렇게 그림책 작업이 시작됐어요. 사실 그림책은 제가 17살 때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오랜 소망이었거든요.
김효희 그렇군요. 그림책 내용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신경아 씻김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예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단,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게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습니다. 저는 독자분들께 책에 사인을 해드릴 때 꼭 ‘여름비, 싱그러운 자연의 축복’이라고 적어요. 여름비가 모든 생명을 넘치게 축복하듯, 이 책도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가볍게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효희 저도 《여름비》를 소장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오늘 인터뷰 끝나면 꼭 사인을 받아야겠어요. (웃음) 선생님께서는 이제 그림책 작가로서 어쩌면 새로운 출발선에 서 계신 셈이네요. 마침 이 잡지의 첫 번째 테마도 ‘출발선’이에요. 선생님께 출발선은 어떤 의미일까요?
신경아 마흔이 넘어서 출발선에 선다는 건 정말 큰 용기예요. 출발선에 선다는 건 무언가를 다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 같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무’는 아니에요. 저는 그 안에 오래전 심어 놓은 ‘씨앗’이 있다고 믿어요.
제가 17살에 ‘언젠가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제 마음속에 씨앗 하나가 심겼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 같지만, 그 씨앗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요. 출발선에 선다는 건 그 씨앗을 다시 들여다보고, 물을 주는 일이죠. 물을 주면 싹이 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그 안에 생명들이 모여들게 되잖아요.
제가 그림책 작가로 출발선에 섰다는 것은 계속 물을 주고 이걸 앞으로 키워 가겠다는 결심이자 다짐이에요. 미술 교육 잡지인 《더 레이어》도 출발선에 서신 만큼 앞으로 자신만의 숲을 만들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효희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끝으로, 예술가의 심장을 가진 많은 미술 선생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신경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꿈을 품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으실 거예요. 저는 그런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림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어떤 방식이든 괜찮아요. 어떤 매체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흘려보내지 말고 붙잡아 두세요.
저도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 SNS에 매일 사진과 짧은 글을 올렸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시를 하면 그 글과 사진을 봐 주시던 분들이 직접 전시장을 찾아와 주시더라고요. 자기표현을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응원을 흘려듣지 말고 그걸 원동력 삼아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처음엔 ‘교사’와 ‘작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두 삶이 하나로 이어졌다고 느껴요. 예술은 사람을 맑게 씻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는 힘이 있죠. 저는 그 힘을 믿으며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가르치는 일이든 같은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선생님들 마음속에도 아마 오래전 심어 둔 씨앗 하나쯤은 있으시겠죠. 그 씨앗을 물 주고, 쓰다듬고, 사랑해 주세요. 참고로, 예술가의 전성기는 60세부터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빛나는 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웃음)



댓글목록
안녕님의 댓글
신경아 선생님의 삶, 예술, 미술 교육에 대한 철학과 서사가 마음 깊이 와닿았어요. 저도 큰 용기를 내어 출발선에 다시 서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예술가의 심장을 두드리면서요 ㅎ
JOYART님의 댓글
작가와 교사, 엄마의 삶을 잘 일궈 아름답게 작품을 만드시는 선생님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려요~
언제 깨워줄까 하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는 내 안에 예술가의 심장을 톡톡 두드려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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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의 떨림, 그 앞에서 마주한 말들 예비 미술 교사와 선배 미술 교사들이 편지로 나누는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