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연결의 공간, 의정부미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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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도서관을 융합한 새로운 시도로,
미술과 독자를 하나의 공간에 공존시킨다.
국내 최초의 미술 특성화 공공 도서관인 의정부미술도서관.
약 5만여 권의 서적과 ‘호크니 빅북’ 3,068번(전 세계 9천 부 인쇄)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서관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열린 공간’이라는 것.
1층에서 출발하여 3층까지 오르내리며 ‘열림의 미학’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
김민애 고양시도서관운영위원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 글 김민애(고양시도서관운영위원)
| 사진·에디터 김형국

4월 중순이 되어서야 봄 향기를 품고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 그 벚꽃길을 지나 하늘능선 근린공원에 자리 잡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을 방문했다.
타래과의 꼬임을 연상하는 도서관 정면에서 방문자를 제일 먼저 반겨 주는 것은 입구 쪽 잔디밭의 모자상이었다. 눈, 코, 입이 없는데도 따뜻한 어머니의 표정과 말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부드러운 곡선미와 따사한 햇살을 그대로 받아 내는 조형물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책으로만 가득할 것 같은 도서관의 고정 관념을 부드럽게 뭉개 주는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는 것처럼 도서관이 미술을 품었다는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를 가득 품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사.
‘이게 도서관이라고?’ 10여 년 전, 타이베이공립도서관 베이터우점에서 느꼈던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타이베이공립도서관이 통창을 통해 숲을 품은 도서관이라면,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도서관 전체가 미술 작품을 품었다고 해야 할까? 더불어서 이용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당신에게 미술은 무엇인가?’ 하고.
2019년 11월 29일에 개관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국내 최초로 미술을 특성화한 공공 도서관이다. ‘공유’를 키워드로 하여, 전문 미술관과 도서관이라는 상충된 영역이 공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점을 인정받아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 받기도 했다. 이러한 건축 의도를 제대로 반영한 곳이 바로 중앙의 원형 계단이다. 건물 한쪽에 엘리베이터와 일반 계단도 있지만, 중앙 원형 계단을 이용하면 1층부터 3층까지 도서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1F
ART GROUND
1층은 ‘미술도서관’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미술 관련 도서가
메인으로 전시되어 있다.

각 층이 바닥과 천장으로 갇혀 있지 않고 3층까지 뚫려 있는 구조이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1층 서가는 책이 펼쳐진 것처럼 보인다. 한 손은 책등을 쥐고 다른 손으로 책장을 촤르르 넘기는 느낌으로 서가가 펼쳐진 느낌이랄까. 중앙의 의자 및 테이블을 두고 둥글게 회오리치는 서가는 병렬식으로 나열된 서가와 달리 여백의 미를 던진다. 서가 양쪽을 책으로만 채우지 않고, 한쪽은 칸막이 독서실형 책상을 두어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그러나 폐쇄적인 책상은 일부이고, 개방형 테이블과 의자가 대부분이다. 개인 작업이 아니라, 도서관에 진열된 책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하도록 디자인한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F
GENERAL GROUND
2층은 어린이 자료실과
일반 자료실이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도서관 입구에서 마주쳤던 모자상의 철제 드로잉 작품이었다. 작품이 게시된 공간을 보자마자, 그곳이 어떤 곳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문고리 위에는 분유통 픽토그램이 자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어린이 자료실과 함께 있는 수유실 위치를 보며, 기획자의 배려가 느껴졌다. 새삼 백영수 작가의 모자상이 이 도서관이 디자인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이 자료실의 서가는 1층 미술 자료 서가와 완전히 달랐다. 미술 자료 서가가 전시 및 보관 그리고 테이블의 결합이었다면, 어린이 자료 서가는 전시와 놀이 개념을 결합했다고 해야 할까. 도넛 형태의 서가 바깥쪽에는 책을 진열하고, 도넛 안쪽은 2층으로 만들어 위층은 다락, 아래층은 동굴 형식을 취해 어린이들이 책과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책을 꼭 테이블이나 책상에서 봐야 한다는 편견을 깨 주는 듯하여 더욱 반가운 디자인이었다.
2층의 히든 스팟은 ‘필사의 숲’이었다. 국내외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숲속처럼 꾸며 놓은 공간에 들어가 원고지에 한 페이지씩 필사해 보는 공간이다. 전체적으로 ‘열린 공간’에 있으면서도 잠시나마 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듯하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좌) 도넛형 서가 바깥쪽에는 책을 진열하고, 안쪽은 어린이들이 책과 놀이를 함께 즐기도록 구성했다.
(우) 2층에는 어린이 자료실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일반 도서 자료실이 구성되어 있다.
3F
MULTI GROUND
3층은 문화 교육 공간과 전시 공간,
작업 공간을 나란히 배치하여 미술도서관의
정체성을 극대화하였다.


교육 공간의 문은 평소에는 사선으로 열어 두었다가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되는 상황이면 부드럽게 닫을 수 있는 피봇 도어(Pivot Door) 방식이었다. 유리가 아니라 가벽 형식이라 전시 벽면으로도 활용 가능한 듯했다. 바로 옆은 오픈 스튜디오였다. 작가들의 개인 작업 공간으로 운영되는 오픈 스튜디오는 매년 2회 공개 모집을 통하여 역량 있는 2명의 신진 작가를 선별하고 있다. 6개월간 오픈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고, 재료비와 도서관 교육 프로그램,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결과 보고 기획 전시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오픈 스튜디오와 미술 교육 프로그램, 전시 등은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여 진행하므로, 전문성이 보장되어 있다.

3층의 특이점은 바로 도서관 안에 카페가 있다는 것. 보통 도서관은 음식 반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커피와 케이크, 스낵 등을 즐기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만 층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건물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만큼 ‘소곤소곤 대화’해 주기를 바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소음을 막아 주는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카펫이다. 마치 호텔 객실 복도처럼 각 층 바닥에는 모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발소리를 잡아 줄 뿐만 아니라 소리 울림도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정적인 도서관을 추구하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소음으로 신경 쓰지 않도록 구성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서관의 풍광은 한눈에 담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3층까지 이어지는 통창 밖으로 사계절을 엿볼 수 있고, 각 층의 캐릭터를 담은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독립적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었다. 바로 ‘공존’이라는 가치였다.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을 덮는 진화의 방식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공존하는 방식이 의정부미술도서관에 담겨 있는 듯했다.
도서관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통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도서관 내부 정경을 번갈아 내려다본다. 휘몰아 돌아가는 서가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자리를 잡고 책을 뒤적인다. 토닥토닥 노트북 자판 두들기는 소리,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에 자주 스친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톤의 대화 소리도 낮게 깔린다. ‘이 도서관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정적이지 않은 이 도서관이 말하고자 하는 미술은 이처럼 움직임의 연결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과 감상자가 조용히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져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것이 바로 이 도서관이 아닐까. 이 가벼운 생활 소음이 도서관 안에서 몰입을 유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 찾은 작은 재미 하나. 도서관 로고에는 알파벳 A, R, T가 들어가 있는데, 도서관 곳곳에 이 영문자를 활용한 인테리어 소품이 있다. 1층부터 3층까지 공간을 둘러보면서 어떤 식으로 숨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도서관을 방문하는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의정부미술도서관 Q&A
| 인터뷰어 김민애(고양시도서관운영위원)
| 인터뷰이 장민영(의정부미술도서관사서)
도서관이 정말 멋집니다. 이용자뿐만 아니라 관광을 하러 오는 방문객도 꽤 많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특히 주말에 더 바빠요. 그렇다 보니 전문적으로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2회, 기관 투어를 운영하고 있고요, 매달 1회 개인 대상 투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시고 방문하시면 됩니다.
미술도서관이라는 특성에 맞게 미술 관련 사서가 따로 근무하나요?
미술 전문 사서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일반 분야, 어린이 분야, 미술 분야 등을 담당하는 사서가 각각 있어요. 그 사서가 관련된 프로그램과 도서 구입 등을 맡고 있지요. 책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사서가 담당하고요. 미술관을 담당하는 큐레이터가 1명 따로 있는데, 그분은 전시관 운영과 시민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요. 초기에는 큐레이터와 사서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사서도 미술 분야에 조금씩 관여하면서 서로 협업하는 형식으로 업무를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개관일이 2019년 11월 29일이었잖아요. 그런데 바로 코로나19가 찾아왔어요. 개관하자마자 비대면 조치가 취해졌을 텐데, 그 당시 어떤 방식으로 도서관 운영을 하였나요?
처음에는 정부 시책대로 임시 폐관도 하고, 나중에는 대출 서비스만 운영할 수밖에 없었어요. 테이블과 의자를 전부 치워서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고요. 그러다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자고 결정했어요. 미술 관련 전문가를 모셔서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SNS 홍보를 통해 소식을 전하거나 라이브 방송도 진행하는 방식으로 도서관 홍보를 했습니다.
도서관에 전시관도 있고,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도 있잖아요. 그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나 협업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의정부에는 백영수미술관이 있습니다. 지역 작가님이라 우리 도서관에서도 백영수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소개해 오고 있는데요. 최근 개관 5주년을 맞아 1층 전시관에서 백영수 작가님의 특별전 ‘함께 그리다’를 3월 31일까지 진행했어요. 백영수미술관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전시된 데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있어서 관람객의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 전시를 못 보게 되어 조금 아쉽네요. 다음 전시는 어떤 것이 계획되어 있나요?
올해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슬로건은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미술도서관’이에요. 그에 맞춰서 체험형 전시 ‘모두의 아틀리에’를 준비하고 있어요. 최대한 예산을 아끼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요. 우리가 보통 새로운 전시를 하기 전에 벽을 깨끗하게 도색하잖아요. 그 전에 자유롭게 낙서도 해 보고, 테이프도 붙여 보고, 그림도 그려 볼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미술관의 벽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는 편견을 허무는 전시가 되겠네요. 몹시 기대가 됩니다.
그동안 해 왔던 미술 프로그램이 한꺼번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려 볼게요. 도서관 한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이 창문으로 보이는 자연 풍경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도서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 연둣빛이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나는 봄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이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겨울 풍경은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눈이 가득 쌓여서 그걸 치우는 게 일이라 고되면서도, 눈을 치우고 들어와 앉아서 소복하게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소리 없이 내리는 눈도 한눈에 담을 수 있고요. 장맛비가 내리는 여름도, 단풍이 발갛게 피어나는 가을도 예뻐요. 여기서는 사계절을 뚜렷이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의정부미술도서관에 매 계절 방문하고 싶네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목록
뇽뇽쌤님의 댓글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미술관이 있는줄 몰랐다니...! 당장 이번 여름 방학에 가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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