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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이야기

미술실, 예술가의 작업실, 예술 작품 및 건축의 공간 등 미술 교사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공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공간은 말이죠, 그냥 미술실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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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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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특별한

우리들의 미술실 이야기



| 글  이경현(창덕여자중학교 교사)

        이은하(백석중학교 교사)

        이효석(동일공업고등학교 교사)


| 에디터  이진화




학교가

하나의 미술실이 되는 순간







| 글  이경현(창덕여자중학교 교사)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 학교 전체가 하나의 미술실이 된다.

80년의 시간을 품은 우리 학교는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미술실만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물감 자국이 밴 책상, 낡은 개수대, 좁은 수납장. 미술 수업 또한 그 익숙한 풍경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작품이 미술실 안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아깝다.’


학교를 걸으면 미술을 만난다


먼저 복도 창틀에 자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따라 작품들이 하나둘 걸리기 시작했고, 복도는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행정실을 설득해 복도 벽에 타공판을 설치했고 전 학년의 작품을 걸었다. 미완성이든 실패작이든 한 학년의 모든 작품을 그대로 복도에 걸었다.

한 학년이 약 60명 정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로 인한 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복도에 멈춰 서서 작품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생겼다. 자기 작품이 아닌 다른 반 친구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모습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 친구들 작품을 보니까 제 작품에서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 것 같아요.”

“선배들 작품은 왜 이렇게 재료가 다양해요?”

작품을 보며 생겼던 질문은 자연스럽게 미술 수업으로 이어졌다. 복도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또 하나의 교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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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과정 전시장이 된 미술실 앞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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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미술실’을 벗어나자 아이들의 시선도 함께 확장되었다. 복도를 넘어 유리 벽과 로비, 학교 곳곳의 빈 공간까지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다른 반 친구들의 작품 앞에서 서로의 시선과 표현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학교를 걷는 일상 자체가 감상의 시간이 된 것이다.

변화의 정점은 1층 로비와 4층 휴게 공간 유리 벽이었다. 정동길에 위치한 학교의 특색을 살려 사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1층 로비에 팝업 전시 형태로 펼쳤다.

학교 방문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학생들이 평소 어떤 수업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학교의 교육 활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공간의 변화가 어느새 3년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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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로비의 팝업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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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휴게 공간 유리벽의 융합 전시

융합 수업은 미술실 너머에 있다


미술 수업이 다른 교과와 만나고 학생들이 그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하려면 먼저 공간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 학교에는 모든 교과가 사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 있다. 과학과와 협력해 진행한 라이트 아트 수업을 위해 미술실 대신 소극장 문을 열었다. 완벽한 암막 처리가 가능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손전등으로 빛을 직접 다루었다.

과학 시간에 배운 빛의 성질은 미술 시간에 조형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었고, 학생들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몸으로 경험했다. 미술실의 평범한 형광등 아래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과학 교사와 함께 작품 상영회를 열었다. 그 순간, 교과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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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에서의 라이트아트 상영회


국어, 음악 교과와 연결된 수업에서는 학교 곳곳(둘레길, 정원 등)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시를 썼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담벼락의 모서리, 창문에 맺힌 빛의 반사, 시들어 떨어진 목련 꽃잎이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보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 풀어냈다.

야외 수업이 부담스러운 교사들에게 드리는 작은 팁 하나. 목걸이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은 미술 수업 중입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복도나 운동장에서 마주치는 교직원들의 염려의 눈길들이 편안한 시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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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둘레길에서 이루어지는 야외 수업



미술실을 나서는 순간


미술실 환경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예산이 필요하고, 승인이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선을 바꾸는 데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문을 열고 한 걸음만 나서면 된다.

복도가 있고, 정원이 있고, 소극장이 있고, 길이 있다. 학교의 모든 공간은 미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오히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질수록 미술 수업은 더 넓게 펼쳐진다.

우리 학교에는 어느 학교보다 큰 미술실이 생겼다. 인식의 전환에 약간의 용기를 더해 학교 전체를 미술실로 바꾼 것이다.

시선을 바꾸자. 미술실을 확장하자. 그리고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가 보자. 미술실의 경계를 지운 자리에서 아이들은 고정된 틀을 넘어 세상과 만난다. 창의적 사고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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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과 복도의 바닥 등 학교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한 선 드로잉 활동





하나둘 아이들이 모여드는 미술실,

그 안의 다채로운 풍경들







| 글  이은하(백석중학교 교사)

미술실 앞 작은 미술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그린 그림 어때요? 잘 그렸죠?”

미술실 문을 여는 순간, 저 멀리 복도 끝에서부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신호탄이다. 정적인 교실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 꾹 참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다정한 공간의 문이 열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달려오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술실 앞에 마련된 작은 미술관 때문이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의 작품을 복도와 창문 곳곳에 전시하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이 걸렸는지 궁금해하며 전시 공간으로 달려온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복도에 전시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그 작품에 관심을 가져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학생들은 미술실 앞에서 나를 만나면 유독 목소리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인사하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며 “제가 그린 거예요!” 하고 크게 외친다. 어떤 학생은 조용히 다가와 자신의 작품을 걸어 달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풍경은 아이들에게 ‘여기는 마음껏 상상해도 좋은 곳’이라는 마음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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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실 앞 복도 미술관


복도에서 시작된 예술적 공기는 삭막했던 학교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던 동료 교사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의 세계에 머문다.
“우와, 이 작품들 저희 반 학생들이 만든 것 맞나요? 정말 감동이에요.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이 이렇게나 감동적인 그림을 그렸다니, 정말 다시 보이네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깊은 내면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그림이 주는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가장 끝자락의 계단 앞, 원래 책걸상이 쌓여 있고 안전바가 설치된 채 방치되어 있던 공간이, 지금은 아이들의 미술 작품이 채워지면서 단순한 통로를 넘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의 자부심이 스며 있는 전시장이자, 학교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는 혈관처럼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다양한 색채로 채워진 미술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수업해요?”

내 책상 앞으로 몰려든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미술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아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미술 수업에 대해 묻는 아이들을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는 오후에도 신기하게 다시 힘이 솟는다. 미술실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 이전에, 아이들의 행복과 나의 열정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특별함을 가진 예술가들이다. 이 예술가들이 건네는 인사와 질문은 미술실의 온도를 높인다. 그 온기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각자의 색깔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이 미술실을 찾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도 많은 아이들은 미술실에 저마다의 색채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오감으로 느껴 보고 싶기 때문에 미술실을 찾을 것이다.

우리 학교 미술실은 구석구석이 다채롭다. 먼저 앞문으로 들어서면 학생들이 그린 애니메이션 그림과 피규어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아이들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미술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의 미술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고, 내가 그린 그림 몇 점도 놓여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 미술실의 또 다른 ‘색채’는 입구 옆에 자리 잡은 커다란 게시판이다. 그곳은 내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집해 온 엽서들과 미술관 전시 포스터, 수업 준비를 하며 틈틈이 그린 습작들로 빼곡하다. 그 틈 속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선 예술가들의 작품을 생경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게시판 앞에 멈춰 서서 “선생님, 이 작품의 느낌이 오늘 제가 그린 그림이랑 비슷해요.” 하며 말을 건넨다.

이처럼 교사와 아이들의 일상이 함께 녹아 있는 이 게시판은 미술실에 온기를 더한다.

시선을 돌려 한쪽 벽면 칠판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우리들의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그곳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일 파스텔 특유의 꾸덕꾸덕한 질감이 느껴지는 풍경화에서부터 맑고 투명한 수채화, 알록달록한 마스킹 테이프로 면을 채운 테이프 아트 그리고 세밀한 손놀림이 돋보이는 색연필 세밀화까지, 재료는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만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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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다채로운 우리 학교 미술실


이처럼 교사와 아이들의 일상이 함께 녹아 있는 이 게시판은 미술실에 온기를 더한다.

시선을 돌려 한쪽 벽면 칠판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우리들의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그곳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일 파스텔 특유의 꾸덕꾸덕한 질감이 느껴지는 풍경화에서부터 맑고 투명한 수채화, 알록달록한 마스킹 테이프로 면을 채운 테이프 아트 그리고 세밀한 손놀림이 돋보이는 색연필 세밀화까지, 재료는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만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의 온도가 머무는 곳


이처럼 미술실 복도의 작은 미술관에서부터 시작하여 미술실 내부의 수납장 위,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자 아이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에서 장난을 치느라 바빴던 아이들이 이제는 복도에서 진지한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고 수업 전후로 칠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우와, 너 이 부분 색깔 진짜 잘 썼다.”

“어떻게 테이프로 이런 모양을 만들었어?”

친구의 그림을 깎아내리거나 장난의 소재로 삼던 아이들이 어느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잘함’을 칭찬하는 관객이 된 것이다. 칭찬을 받은 아이의 어깨가 으쓱해지고, 그 긍정의 에너지는 다시 도화지 위로 스며든다.


8274b2724e62d9395662ead8c62b6488_1783324783_33.jpg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아이들에게 미술실이 다정하고 안전한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이렇듯 나의 미술실은 학생들의 목소리와 미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미술 교사로서 내가 바라는 미술실은 거창한 기술을 배우거나 뛰어난 미술가를 길러 내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나 또한 다정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주는 공간, 미술 작품의 작가로 학생들의 이름을 당당하게 적어 주는 공간, 서툰 선과 색채 표현마저도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아이들에게 미술실이 다정하고 안전한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나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이 공간에서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예술가가 탄생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미술실 문을 닫고 나오며 복도의 작은 미술관에 전시된 학생들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쏟아지는 은하수를 그리며 느꼈을 자유, 저무는 노을 앞에서 떠올렸을 추억이 담겨 있다. 손이 가는 대로 물감을 흩뿌리며 몽글몽글한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던 장면도, 다문화 학생이 흐릿한 기억으로 떠올린 예전 마을의 풍경도 펼쳐져 있다. 그 작품들을 바라보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지닌 마음의 온도를 떠올려 본다.





놀이와 표현이

살아나는 미술실







| 글  이효석(동일공업고등학교 교사)

놀이의 기억


주산학원 또는 속셈학원을 마친 후 또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야구 배트가 아닌 주먹으로 공을 치는, 이른바 ‘짬뽕’이라는 놀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아파트 공터를 비롯해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에서든 친구들과 이 야구 비슷한 놀이를 즐겼다.

어느 날, 나는 이 놀이를 하다가 2층으로 된 연립 주택 단지의 외벽 창문을 깨뜨리고 말았다. 나는 집주인 아주머니께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려 드려야 했고, 그 후 언제 집으로 전화가 걸려 올지 몰라 불안해해야 했다. 제발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동안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물론 그 뒤 부모님과 통화가 되었고 깨진 유리창은 새것으로 교체됐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장소에 가는 것을 꺼렸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깨뜨렸다는 사실과 부모님께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즐거웠던 놀이를 불안과 두려움의 기억으로 남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보면, 나의 기억 속에 단순히 남의 집 창문을 깬 사건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배워 가던 시간도 고스란히 함께 남아 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미술 시간에도 학생들이 놀이를 통해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창작 활동을 할 때, 나는 혹시 부모나 타인의 지적이 실패의 기억으로 내면화되어 자기표현을 주저하는 학생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미술실은 그런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고, 자기 안의 생각과 감각을 자유롭게 표현해 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삶을 위한 미술 교육


미술을 통해 삶에 관여하고 삶을 이해하는 ‘삶을 위한 미술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와 인생에서 자신을 움직일 힘을 갖도록 돕는다. 이것이 삶을 위한 미술 교육의 목적이며,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미술 수행 평가를 통해 창의성을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자신의 실제 삶과 깊은 관계를 맺는 미술 활동을 경험할 때, 스스로가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쉽게 ‘손절’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 주고 동료가 되어 주는 태도야말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일 것이다.

최근 학생들과 종이 박스를 활용한 입체 조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 미술 교과서에도 박스를 활용해 얼굴을 만드는 활동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응용해 학생들이 조별로 작업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박스를 자르고 붙이고 세우고 하다 보면, 미술실이 쓰레기로 어지럽혀지고 분위기도 어수선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창작물이 나오기도 한다.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마치 안개 속에서 폭풍우를 지나온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학생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에 몰입했다. 조별 작업이라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다투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고,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어떤 학생은 리더가 되어 작업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학생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 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놀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다투고 화해하며 하나의 놀이를 완성해 가듯이, 학생들도 창작 활동을 통해 관계를 배우고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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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투고 화해하며 하나의 놀이를 완성해 가듯이, 학생들도 미술실에서의 창작 활동을 통해 관계를 배우고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경험은 지역 예술가를 학교로 초청해 진행한 수업이다. 작가를 학교로 모시고 ‘예술가와의 만남’이라는 형식으로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마치 포럼에 참여한 것처럼 학생들은 작가에게 “작품 가격은 얼마인가요?”, “작품이 실제로 팔린 적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에게는 예술가가 학교에 찾아와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해 주는 일 자체가 큰 자극이었다. 예술가를 만나고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학생들에게 미술이 교과서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작년에는 교육지원청과 함께 〈S-Te-P 지역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업 시간이나 수행 평가를 통해 학생들이 만든 결과물을 교내에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갤러리나 미술관과 협력하여 실제 전시 공간에 걸어 미술 수업의 공간을 학교 밖으로 확장해 보려는 시도였다.

학생들은 자신을 탐색한 후 자화상과 다양한 얼굴 표현 작업을 진행했고, 이 작품들을 학교 밖 전시 공간에 걸었다. 물론 처음 시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쉬움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시 장소는 대중교통이나 유동 인구, 접근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서 오픈식 외에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관람객 수에만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 실제 전시 공간의 주인이 됨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학교 밖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작품 한 점을 완성한 것 이상의 의미로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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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4b2724e62d9395662ead8c62b6488_1783327842_72.jpg 미술실과 전시 공간을 학교 밖으로 확장시켜 본

〈S-Te-P 지역 연계 프로젝트〉

내가 꿈꾸는 미술실


미술 활동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에게 미술 활동은 자기 안에 잠재된 ‘끼’를 발견하고, 표현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정서적 결핍이나 표현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술실은 자신을 조금씩 꺼내 놓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함께 놀며 정서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듯, 청소년들도 동료와 함께

창작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미술 교육은 미대를 진학해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술 교육은 모든 학생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일이고, 이 일이 이루어질 때 미술실은 특별한 공간이 된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예술가들이 모여 실험하고 창작하는 공간이었듯, 미술실도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해 보는 ‘팩토리’가 될 수 있다.

동일공업고등학교 미술실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학생들은 놀이를 하듯 미술 활동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조율하며 함께 성장한다. 나에게 미술실은 그런 공간이다. 학생들이 잠재된 끼를 마음껏 펼치는 곳, 두려워하지 않고 표현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곳, 자기 삶을 스스로 움직일 힘을 조금씩 길러 가는 곳. 그것이 내가 꿈꾸는 미술실이자 청소년 미술 교육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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