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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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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관은 관람객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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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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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윤혜(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 

| 에디터  김형국




오늘날 미술관은 단순히 전시와 작품만을 관람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와 협업하고 관람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열린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를 전시의 주제로 내세우는 경우,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마련하여 관람객의 경험과 해석을 공론의 장으로 확장하는 개념적 장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0년 박물관 이론가인 에일린 후퍼 그린힐(Eilean Hooper-Greenhill)이  ‘포스트 뮤지엄’(post-muse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많은 뮤지엄이 추구하는 방향을 포스트 뮤지엄의 주요 속성으로 보았으며, 모더니즘적 모델에서 벗어나 일방적인 의사 결정과 소통 방식을 지양하고 공동체와 의견을 공유하는 상호 소통적 유형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포스트 뮤지엄의 유형은 동시대 미술관으로 전환되는 담론에 근간을 두고 있어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관은 다원적이고 포용적인 개념과 맞닿아 있다. 미술관 고유의 기능을 넘어 관람객을 위한 경험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미술관의 경계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관은 어떤 구조와 형태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과 소통하는가? 동시대 미술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고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시대 미술 작가들 역시 관람객을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로 끌어들이면서, 작품을 통해 개념적, 형식적 측면에서 관람객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며 작품의 의미를 형성해 가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동시대 미술관이 어떻게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소통을 실현하는지를, 놀이·체험 중심의 사례와 작가와 관람객의 협업 프로젝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놀이와 체험으로 소통하기

2000년대부터 미술관 전시에서 관람객을 작품에 유입시켜 놀이나 체험을 경험하게 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는 주로 설치형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작품을 직접 체험하고 이 과정이 다른 관람객들에게 또 하나의 관람 요소가 되는 복합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설치형 작품들은 주로 미술관 야외 공간을 비롯하여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 공간에서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는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도 작품의 일부로서 관람객들에게 몰입감을 조성한다. 미술관은 관람객에게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고, 작가는 미술관이 제공한 공간에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작품의 의미를 구성해 나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레안드로 에를리치, <건물>, 2004


​에를리치(Erlich, Leandro/1973~/아르헨티나)는 주로 일상적이거나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만들거나, 시각적 눈속임을 활용해 환영을 연출하는 작가이다. <건물>은 2004년 ‘라 뉘 블랑쉬’(La Nuit Blanche)라는, 파리 전역에서 열리는 미술 축제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에서 전시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에서는 수직으로 서 있어야 하는 건물 외벽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비스듬한 각도로 설치된 대형 거울이 바닥을 비추고 있다. 바닥에 누워 거울을 보면 바닥의 건물 외벽 형상이 지상에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거울을 통해 환영을 경험한다. 실제로는 바닥에 누워 있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관람객은 바닥에 눕거나 기어다니면서 자신이 실제 벽면에 매달린 것처럼 연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연기를 함께 감상한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관람객의 개입과 경험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미끄러지는 몸, 깨어나는 감각

카스텐 휠러, <테이트 사이트>, 2006


2006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테이트모던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 중 하나인 터바인 홀은 관람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휠러(Höller, Carsten/1961~/독일)는 터바인 홀에서 <테스트 사이트>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5층 규모의 거대한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일종의 대형 미끄럼틀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 이 작품을 체험했다. 본래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는 관람객이 신체적으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미끄럼틀을 타는 순간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작가는 미술관에서의 전통적인 관람 방식을 탈피하여, 관람객이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새로운 방식과 감각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이 느끼는 내적인 감정은 작품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


그네 위에서 나누는 

작은 공동체 슈퍼플렉스, 

<하나 둘 셋 스윙!>, 2017


슈퍼플렉스(Superflex)는 세 명의 덴마크 출신 아티스트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실질적인 행동과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도구(tool)라고 부른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은, <하나 둘 셋 스윙!>을 통해 놀이라는 행위도 사회 변화를 이끄는 진지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언뜻 단순한 구조물의 그네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그리 가볍지 않다. 협력과 집단적 행동의 중요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네는 세 명이 함께 타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네를 타며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협력하게 되고, 타인과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긍정적 에너지와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공동의 신체 경험을 통해 놀이를 예술로 전환시키며 소통과 협력의 공동체를 창조해 낸다.





협업으로 소통하기


관람객의 참여가 작품 제작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관람객이 존재하지 않으면 전시가 진행되지도 않고, 작품 또한 완성되지 않는다. 이처럼 최근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의 협업을 전제로 설계한 작품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관람객의 참여와 경험은 작품에 다양한 의미와 깊은 감동을 더하는 한편 작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공동체로 이룬 필경사의 방 

안규철, <1,000명의 책>, 2015


안규철(1955~/한국)은 개념적 오브제와 텍스트 작업에서 시작하여 공공 미술까지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작가이다. 그 역시 관람객의 참여를 동원하는데, 놀이 형태의 감각적 체험보다는 사유의 계기가 되는 경험을 지향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전에서 작가는 관람객을 작품의 공동 생산자 혹은 제작자로 참여시켜 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개념적 작품들을 선보였다. <1,000명의 책>은 1천여 명의 관람객이 국내외 문학 작품을 연이어 필사하는 필경 작업이다. 미리 예약한 참여자들은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1시간 동안 주어진 문학 작품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시대에서의 손 글씨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무언가를 손으로 쓰는 행위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작가는 손 글씨를 통해 서로 흩어져 있던 이들을 연결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것,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야기가 담긴 사물의 재탄생 

최정화, <민들레>, 2018


최정화(1961~/한국)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처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 쓰임이 다한 생활용품 등을 활용해 설치 작품을 제작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ㅡ꽃·숲》 전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꽃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주제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의 대표 작품 <민들레>는 약 7,000개의 식기를 모아 만든 거대한 꽃이다. 작가는 작품 제작을 위해 ‘모이자 모으자’라는 이름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시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식기들을 모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식기를 ‘수집’한 작가는 자신의 예술 언어인 ‘쌓기’의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가는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참여와 협업이 공동체적 의미로 확장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준다. 

감정 몰입을 유도하는 퍼포먼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 2010


예술로 나의 내면을 볼 수 있을까? 행위 예술가 아브라모비치(Abramović, Marina/1946~/유고슬라비아)가 관람객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퍼포먼스는 작가와 관람객이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관람객은 원하는 시간만큼 자리에 머물 수 있다. 단,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전시 기간 중 한 남자 관람객이 작가와 눈을 마주한 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는 작가의 옛 연인이었다. 둘은 고요한 시선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말로 담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공유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이 퍼포먼스에서 다수와 감정적으로 교감하면서 몰입을 유도한다. 작가는 스스로가 거울이 되어 현대인이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실을 비춘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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