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다듬고 지혜를 녹이는 인포그래픽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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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Infographics).
단어 그대로 풀면 ‘정보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만으로는 인포그래픽이 가진 깊은 매력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생각을 다듬어 삶 속에 녹아들도록 시각화한다는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장성환 대표.
그에게서 ‘진짜’ 인포그래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인터뷰 진행 이소현(선유중학교 교사)
| 사진 김효술
| 에디터 이진화
이소현 ‘인포그래픽 연구소’라서 그런지 출입문에 붙어 있는 그래픽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장성환 ‘미시오’, ‘당기시오’라는 텍스트는 글자를 읽고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미지를 보면 누구라도 ‘밀어야 되겠구나.’, ‘당겨야 되겠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 출입문에 붙어 있는 픽토그램 이미지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출입문을 열면 최근 발행된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그에 담긴 스토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보인다.
이소현 학교에서 인포그래픽 수업을 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첫 질문으로 드리고 싶네요. 대표님께서는 좋은 인포그래픽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성환 유익한 정보여야 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춰져야 진짜 좋은 인포그래픽이에요. 역사 만화, 과학 만화 같은 걸 아이들이 왜 좋아할까요. 그 속에 정보도 담겨 있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거예요. 인포그래픽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안 물어봤는데 궁금해지는’ 매력, 이게 정말 필요해요.
이소현 대표님의 인포그래픽을 보면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그게 매력인가 봐요.
장성환 요즘 세상에서는 매력 없으면 아무도 안 봐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의 준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인포그래픽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매력’이라는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 저는 작업할 때 처음 2일 동안은 무조건 마인드맵으로 생각을 정리합니다. 생각을 먼저 구조화하고, 정보를 정리하고, 그다음에 그래픽 작업을 합니다. ‘그래픽은 뒷단이다.’ 이게 제가 항상 강조하는 원칙입니다. 저는 “디자인 예쁘게 해 주세요.”라는 클라이언트의 말을 가장 싫어합니다. (웃음)
이소현 대표님께서는 다양한 주제로 인포그래픽을 제작하시는데요, 디자인의 주제는 대개 어떻게 정하시나요?
장성환 주제 선정은 정말 인포그래픽 작업의 핵심이에요. 아무리 예쁜 그래픽을 만들더라도, 주제가 힘이 없으면 디자인에 울림이 없거든요. 저는 주제를 정할 때 개인적인 취향만 고려하지 않아요.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서 접근하죠. 수익성, 정보성, 상품성, 사회적 의의 이런 걸 점수로 환산해 평가하고, 가장 균형감 있는 주제를 선택합니다. 물론 저 혼자 주제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팀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시, 음식, 동물처럼 서로 연결되는 주제군도 생깁니다.
이소현 도시나 음식, 동물 같은 것들은 결국은 우리의 삶의 영역인데요, 그렇다면 대표님 디자인의 주제는 우리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많을 것 같네요.
장성환 네, 맞습니다. 저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궁금증에서도 주제를 발견합니다. 예를 들면, ‘왜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집고양이보다 짧을까?’와 같은 궁금증이지요. 이렇게 탄생한 인포그래픽이 <올바른 고양이 돌보기>입니다. 그냥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를 그리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고양이들의 삶의 차이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던 것,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질문하는 것.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기 쉽게,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것, 이것이 제가 인포그래픽 작업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소현 대표님께서는 한국 문화, 역사적인 내용 등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장성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왜 우리는 이걸 잊고 살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뉴스를 보다 보면 ‘이건 왜 이렇게 복잡하게만 설명할까?’ 하는 답답함이 생겨요. 그럴 때 이걸 한 장으로 정리하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1 운동 인포그래픽을 만들 때도, 단순히 ‘1919년 3월 1일’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앞뒤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함께 보여 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3·1 운동에 불을 지핀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과 같은 일을 통해 선후 인과 관계를 보여 주는 거지요. 역사를 단순 암기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로 풀어 주고 싶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올바른 고양이 돌보기 Ⓒ 2018, 이공삼

3·1 만세 운동Ⓒ 2019, 이공삼
이소현 이제 수업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학생들에게 인포그래픽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성환 생각을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힘을 키워 주는 겁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서, 핵심만 뽑아내고, 그걸 구조적으로 보여 줄 수 있게 하는 거죠. 많은 분들이 인포그래픽이라고 하면 ‘예쁘게 꾸미는 것’부터 떠올리는데, 생각 자체를 간결하게 다듬는 것, 그게 진짜입니다.
이소현 ‘생각을 간결하게 다듬는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요.
장성환 예를 하나 들자면요,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그걸 ‘점심’, ‘카레’, ‘맛있게’ 이렇게 단어로 끊어 낼 수 있어야 해요.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면 정보가 복잡해져서 핵심이 잘 안 보여요. 이렇게 문장을 줄이는 훈련을 하면 생각의 뼈대, 즉 구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생선 살을 발라내면 뼈가 드러나는 것처럼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왜?’를 묻는 훈련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기 때문이죠. 아기들도 그렇잖아요. ‘왜?’, ‘왜?’ 하고 끊임없이 묻는 시기가 있는데, 그걸 귀찮아하지 말고 대답을 잘 해 줘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어요.
이소현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 구조화하는 힘을 키워 주는 게 가장 중요하군요. 그리고 문장을 단순화하고, 핵심을 뽑아내는 훈련을 계속하는 것.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저부터도 뭔가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웃음) 인포그래픽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과정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대표님이 추천해 주실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장성환 시작 단계, 그러니까 첫 단추가 정말 중요한데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면 안 됩니다. 복잡한 걸 요구해서도 안 돼요. 정보량이 적은 주제로 시작해야 합니다. 또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자기한테 익숙한 것에서 출발해야 해요. 예를 들면 저는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한테 좋아하는 이야기 하나씩 들고 와 보라고 했었어요. 삼국지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삼국지가 왜 좋은지를 묻고, ‘영웅이 멋있어서 좋아요’, ‘계략이 재밌어요’ 하는 식의 아이들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내는 거지요.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도 좋은 재료가 됩니다. 아이들이 떡볶이, 김밥 같은 걸 대답하면, ‘김밥을 만드는 과정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해 볼까?’ 하면서 다음 과정을 연결시켜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김밥 레시피만 정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김밥 레시피를 누구에게 왜 전하고 싶은지도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 ‘엄마한테 주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해서요.’, ‘영양가가 많아서요.’와 같은 대답 속에 아이들의 진짜 마음이 드러나요. 이렇게 아이들 마음속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수업이 살아납니다. 인포그래픽을 만들고 싶은 동기가 생기는 거죠.


이소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어떤 인포그래픽 제작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장성환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손으로만 작업하면 안 됩니다. 손 글씨로 하면 수정이 힘들어요. 한 번 쓰면 지우기도 어렵고, 다시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만 돼도, 간단한 앱은 충분히 다룰 수 있어요. 저는 본격적인 자료 수집 전에 마인드맵 툴을 가지고 기획의 개요를 먼저 작성합니다. 이 과정이 확고해야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작업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마인드맵으로 소통의 모호함을 걷어 낼 수 있어요. 마인드맵을 활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소현 그렇다면 마인드맵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의외로 마인드맵 작성을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많거든요.
장성환 먼저 마인드맵은 절대 큰 주제에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항상 ‘작은 것부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합니다. 좋아하는 음식, 반려동물, 취미 같은 가볍고 즐거운 소재에서 출발해서 점점 더 확장해 나가는 거죠. 작은 주제, 예를 들면 ‘우리 집 강아지’ 같은 걸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어요. 강아지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는지, 강아지가 언제 왔는지, 누구랑 친한지, 이런 걸 가지치기하면서 정리하는 겁니다. 여행 계획할 때도 마인드맵을 쓰면 좋아요. ‘도쿄 3박 4일’ 여행을 간다고 하면, ‘출발’ - ‘2일차’ - ‘3일차’ - ‘귀국’ 이렇게 메인 가지를 만들고, ‘먹고’, ‘사고’, ‘보고’ 같은 키워드로 세부 계획을 확장하는 거죠. 이걸 안 하고 여행을 가면, 가서 꼭 싸우게 됩니다. 진짜예요.(웃음)
이소현 저와 같이 인포그래픽 수업에 도전하는 교사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장성환 저는 마이클 글래드웰이라는 저널리스트의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웃라이어>, <티핑 포인트>, <블링크> 같은 책들에 ‘1만 시간의 법칙’ 이야기라든가, 성공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걸 보면 타이거 우즈나 모차르트 같은 사람들조차 어릴 때부터 정말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타이거 우즈는 새아버지가 골프 전문가였고, 모차르트의 아버지도 음악 교육에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결국 잘 고안된 교육 프로그램과 훌륭한 인스트럭터, 그리고 지속적인 훈련이 있어야 진짜 실력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시각화하는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작업 공간
이소현 교사들도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장성환 맞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문화적 맥락이에요. 우리가 포크로는 콩알을 못 먹잖아요. 그래서 젓가락이 있는 거예요. 문화와 환경에 따라 도구도 달라지죠. 인도에선 손으로 음식을 먹지만, 우리는 뜨거운 국밥을 먹으니까 젓가락과 숟가락이 발달한 거예요. 결국, 정보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도 자신만의 문화, 자신의 경험과 배경 속에서 정보를 시각화할 수 있도록 지도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툴이 쉬워 보인다고 가볍게 보지 말고,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사고의 구조를 먼저 이해하고 경험해 보라고요. 그게 인포그래픽 수업의 진짜 시작입니다.
이소현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새로운 프로젝트나 스타일이 있을까요?
장성환 삶과 더 가까운,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시각화하는 작업이에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을 인포그래픽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전세 사기는 왜 생기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전세, 월세 계약할 때 뭘 확인해야 할까? 이런 것들이요. 사실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흩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이런 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죠. 저는 이걸 단순한 소비용 인포그래픽이 아니라, ‘지혜를 담은 원 페이퍼북’ 같은 형태로 만들고 싶어요. 한 장짜리 인포그래픽이요.
이소현 ‘지혜를 담은 원 페이퍼북’이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장성환 한 장짜리지만 그냥 예쁜 그림이 아니라 걸어가다가 무심코 봐도 머릿속에 남는 그런 인포그래픽입니다. 예를 들면, 달이나 태양계 같은 주제도 단순히 과학 지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달이 이렇게 멋있구나.’, ‘지구가 태양을 이렇게 돌고 있구나.’ 하는 걸 감성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읽고 공부하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지혜를 시각화하는 인포그래픽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책이 될 수도 있고, 포스터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형태였으면 좋겠어요.
달 Ⓒ 2022, 이공삼
디자이너 장성환은...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 장성환 대표는 <연합뉴스> 그래픽 뉴스팀의 창설 멤버로 활동했고 <주간동아>, <과학 동아>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2003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를 설립하고 인포그래픽을 연구, 생산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곳으로 성장하였으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으로 ‘인포그래픽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말로피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9년부터는 홍익대학교 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H>를 창간하여 지역 문화와 인물을 소개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203 인포그래픽 연구소 장성환 Ⓒ 2014, 이공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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