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수업 이야기

미술 수업 방법 및 자료, 교육과정 등 미술 수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다룹니다.

찬란한 폐기물 : 21세기 패총과 욕망의 화석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6. 07. 08
좋아요0 0

본문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59179_61.jpg

Installation view, Damien Hirst: 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2026),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데이미언 허스트' 특집

첫 번째 이야기,

질문에서 출발한 미술 수업




| 글  윤미리(삼각산고등학교 교사) 

| 에디터  이진화


패총: 선사 시대 인류가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 생활 폐기물이 쌓여 이루어진 무더기로, 

그 속에 토기나 석기·뼈 따위의 유물이 있어 고고학상의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

dff6a84f52af24c7392118c71233179a_1783500685_19.jpg
 

데이미언 허스트는 삶과 죽음, 소비와 욕망, 예술의 가치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온 현대 미술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전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었다.


삼각산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윤미리 선생님은 이 전시장에서 마주한 허스트의 질문을 교실의 미술 수업으로 가져왔다. 학생들은 윤미리 선생님이 설계한 미술 수업을 통해 쓸모를 다한 폐기물을 ‘21세기 패총’으로 재해석하고, 사치스러운 장식과 가상의 서사를 더해 현대 사회의 욕망과 가치 체계를 탐구한다. 하찮은 쓰레기는 유물이 되고, 소비의 흔적은 욕망의 화석이 된다.


본 수업은 허스트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학생들의 삶과 연결한 현대 미술 프로젝트다. 본 호 ‘아트 스펙트럼’에 수록된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 리뷰 〈삶과 죽음 사이, 허스트가 남긴 질문들〉과 함께 읽어 보면, 전시의 질문이 어떻게 미술 수업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더욱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미술 교육에서의 데이미언 허스트


기성세대에게 데이미언 허스트는 다소 낯설고 도발적인 작가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작품은 미술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십대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현대 미술 작가다.

허스트는 예술의 가치와 기준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미술의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미술 수업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과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된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57524_54.jpg
 

예술과 재료의 한계에 대한 탐구

허스트는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시작된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을 급진적으로 확장시킨 작가 중 한 명이다. 도덕적·윤리적 논쟁과는 별개로, 죽은 동물은 물론 살아 있는 파리까지 매체로 사용한 그의 작품은 예술의 재료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예술의 형식과 재료에 대한 고정 관념을 넘어,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자유롭게 사고하고 탐구해 볼 수 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애도의 방식에 관한 문제

허스트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죽음’은 십대들에게도 묵직하고 중요한 화두다. 특히 한국 사회는 많은 학생을 떠나보낸 사회적 참사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그동안 이런 상처를 예술로 기록하고 사회적으로 추모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늘 서늘한 죽음을 대면하게 하는 허스트의 작업은, 미술이 사회적 상실과 애도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이러한 토론은, 학생들 각자가 인식하는 생명의 유한성을 시각화하거나,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안전 교육과 연계해 자신만의 ‘기억의 공간’을 기획해 보는 활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교실에서 훌륭한 논쟁거리가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채운 유리 수조 안에 상어를 넣어 전시한 것이다. 부패한 상어를 새로운 상어로 교체하고도 원작의 제작 연도를 그대로 유지한 이 작품은, 예술에서 ‘원작’이란 무엇이며, 물리적인 제작 행위와 작가의 아이디어 중 무엇이 작품의 본질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미술 수업    찬란한 폐기물 : 21세기 패총과 욕망의 화석



【 수업 개요




• 대상: 고등학교 2학년
• 핵심 주제: 학생들의 일상적인 폐기물을 ‘21세기 패총’으로 명명하고, 이를 ‘사치스러운 매체’와 결합하여 현대 사회의 욕망과 가치관을 
   탐구하는 현대 미술 작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작품의 의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다.
• 수업 아이디어의 배경: 데이미언 허스트는 삶과 죽음, 소비와 욕망, 예술의 가치에 관한 질문을 작품으로 제시해 온 현대 미술가이다. 
   본 수업은 허스트의 작업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학생들이 일상 속 폐기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재구성해 
   보는 활동으로 구성하였다.
   ① 가치의 재구성: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처럼, 하찮은 폐기물에 비즈, 큐빅, 레이스 등 사치스러운 장식을 더하면서 극단적인 
        물성의 충돌을 경험한다.
   ② 서사의 창조: 허스트의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처럼, 미래의 고고학자가 되어 21세기 유물에 가상의 서사를 부여한다.
   ③ 전시 기획: 한때 큐레이터로도 활동했던 허스트의 전시 방식처럼, 완성된 작품에 예술적 권위를 부여하는 전시 공간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한다.



【 단계별 활동 


1단계    동기 유발 및 아이디어 구성

   ①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 프로젝트를 감상하며, ‘가짜 서사’가 어떻게 예술적 가치와 권위를 만들어 내는지 탐구한다.

      - 산호와 따개비가 붙은 미키마우스와 트랜스포머 조각 그리고 이를 심해에서 인양하는 장면을 연출한 사진 및 영상을 함께 살펴본다.

      -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생각을 확장한다.


      “작가는 대중문화의 흔한 캐릭터들을 청동으로 만들고 여기에 인공 산호를 붙여 ‘2000년 전 바다에 가라앉은 고대의 보물’이라는 

      완벽한 거짓말을 꾸며 냈어요. 그리고 그것을 권위 있는 미술관에 전시하자 사람들은 기꺼이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했지요.”

      “예술의 가치는 작품 그 자체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박물관의 조명과 그럴듯한 이야기, 그리고 전시라는 장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하찮은 쓰레기를 전시하고 미래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도슨트 캡션을 작성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 보잘것없는 일회용품도 어떤 서사를 부여하고 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국보급 유물처럼 권위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스토리텔링과 전시 연출이 만들어 내는 힘을 이해한다.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2017)

데이미언 허스트가 201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선보인 대규모 

프로젝트다. 전시는 고대 선박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이 난파되고, 

그 안에 실려 있던 보물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양되었다는 가상의 

서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허스트는 금·대리석·청동·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190여 점의 조각과 유물을 전시했으며, 실제 일부 

조각을 홍해와 인도양 해저에 투하해 산호가 착생하도록 한 뒤 건져 렸다.

전시에서는 이 과정을 담은 영상과 사진까지 함께 선보여 실제 고고학 

전시처럼 연출했다.

전시장에는 고대 신상 옆에 미키마우스나 트랜스포머 같은 현대 대중

문화 아이콘을 고대 유물 양식으로 재현한 형상이 등장한다. 

허스트는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캐릭터들도 수천 년이 

지나면 신화 속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사실과 허구, 유물과 

예술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62021_46.png




② 동궁과 월지의 주령구(술자리 장난감)와 동물 뼈 사진을 감상하며, “평범한 일상의 사물과 쓰레기가 어떻게 천년의 시간을 
    거쳐 국보급 유물이 되었는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사물의 가치가 시간과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또한 ‘시간과 박제’의 개념도 살펴본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63466_97.jpg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주령구 모형(복제품)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63481_89.jpg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곰 뼈

③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와 이불의 〈장엄한 광채〉를 감상하며, 이질적 소재의 결합을 통한 가치의 재구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63826_42.jpg
이불(1964~/한국) 장엄한 광채(생선, 시퀀, 과망간산칼륨, 폴리에스테르백/360×410cm/부분/1991, 1997년)
 

2단계    오브제 선정

   ① 21세기의 폐기물을 신석기 시대의 패총에 비유하여 ‘21세기의 패총’으로 명명한다.


   ② 다음 카테고리 예시를 참고하여 폐기물을 수집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플라스틱 패총

(속도와 편리함의 화석)


 • 일회용 배달 용기, 테이크아웃 컵, 택배 완충재 등

 • 단 한 번의 식사를 위해 과도한 자원을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이면과 환경 문제를 상징


약방의 패총

(통제와 불멸의 욕망)


 • 빈 영양제 통, 알약 포장지(블리스터 팩), 인공 눈물, 에너지 드링크 용기, 다이어트 약 포장지 등

 • 현대 의학이 노화와 피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종교적 맹신


학업의 패총

(경쟁과 성과의 제단)


 • 잉크가 마른 형광펜, 몽당연필, 교재 조각, 낡은 실내화 등

 • 십대의 땀과 눈물이 오직 '점수'로 환산되는 성과주의 사회의 단면 상징


치장의 패총

(허상과 전시의 껍데기)


 • 바닥난 틴트 통, 깨진 섀도 팔레트, 패스트패션 상표, 낡은 신발 등

 • SNS 기반의 보여 주기식 문화와 소비 중심의 외모 지상주의를 상징



3단계    은폐와 박제

   ① 개념 도입: 크리스토의 ‘포장(Wrapping)’ 기법과 폼페이 유적의 ‘화산재 박제’ 개념을 연결하여 살펴본다. 

       사물의 원래 모습을 감추고 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크리스토의 작업과, 일상의 흔적이 유물로 

       남은 폼페이의 사례를 통해 ‘은폐’와 ‘박제’의 의미를 이해한다.

   ② 표현 기법: 수집한 폐기물에 아크릴 물감이나 젯소를 두껍게 도포하여 원래의 상표와 색상을 철저히 ‘은폐’한다. 

       익숙한 소비재의 정체성을 지우고, 무가치한 쓰레기를 화산재에 덮인 유물처럼 단단하고 거친 덩어리로 ‘박제’한다.




4단계    가치의 재구성 및 장식

   ① 개념 도입: 앞서 감상한 허스트와 이불의 작품을 참고하여 ‘부패와 소멸’과 ‘영원한 장식’의 충돌을 살펴본다.


   ② 표현 기법: 형태만 남은 폐기물에 이질적이고 사치스러운 재료를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 광물적 사치: 핀셋을 이용해 큐빅, 비즈, 스팽글, 금박, 큐빅 스티커 등을 집착에 가까울 만큼 빈틈없이 붙인다.

       - 부드러운 사치: 화려한 패턴의 천, 벨벳, 르네상스풍 레이스와 리본 등으로 쓸모를 다한 폐기물을 감싸, 

         기괴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5단계    3026 박물관 특별전 기획

   ① 전시 공간 연출(아우라 창출): 모둠별로 하찮은 쓰레기를 권위 있는 유물로 둔갑시키는 박물관 수준의 

       전시 공간을 기획한다. 검은 벨벳 천이 깔린 좌대, 철저히 통제된 주변 조명, 작품만 비추는 핀 스폿 조명을 

       활용하여 압도적인 아우라를 연출한다.


   ② 도슨트 캡션 작성: 미래 고고학자의 시점에서 유물의 명칭과 21세기 사회상에 대한 해석을 담은 캡션을 

       작성한다. 또한 자본주의적 욕망과 허영심을 드러내는 ‘가상의 경매가’를 함께 제시하여 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탐구한다.


예시 캡션

 

명칭


 21세기 호모 사피엔스의 영생 부적(빈 영양제 통)

 

설명


 21세기 인류는 이 플라스틱 통 속 화학 물질이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이라 믿었다.

 표면에 박힌 장식은 죽음을 두려워했던 시대의 강박적인 욕망을 보여 준다.


   ③ 상호 비평: “가격표와 전시장의 조명(연출)은 어떻게 예술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를 주제로 토론하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 평가 계획 



의미 부여(30%)    일상적 폐기물에서 현대 사회의 특징과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설득력 있는 서사로 구성했는가?


매체 표현 (40%)    ‘은폐’와 ‘장식(큐빅/천)’ 기법을 활용하여 이질적인 물성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는가?

 

전시 기획 (30%)    작품의 의도를 드러낼 수 있는 전시 공간과 도슨트 캡션을 구성했는가?

 

《3026 박물관 특별전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6136_44.jpg


학생 전시 작품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6975_45.jpg

유물 명칭 실수의 제거

원래 형태 수정테이프

유물 설명 

21세기 생명체들은 이 물건으로 실수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다. 이 유물은 간단한 

실수만을 지울 수 있는 물건으로, 모든 실수를 지우려는 

그 당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7227_77.jpg


유물 명칭 21세기의 혁신적 결혼 서약 물병

원래 형태 플라스틱 페트병
유물 설명 20세기까지는 반지를 결혼 서약의 상징으로 여겼다. 21세기 무렵 
한국 강남구 (추정)에서 발견된 이 물병은 21세기부터 시작된 결혼 
물병의 시초가 되는 유물로, 실제 신부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물병을 화려하게 꾸미는 행위를 통해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재력을 드러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7329_86.jpg

유물 명칭 21세기 욕망 보석 케이크

원래 형태 우유팩
유물 설명 타인에게 부를 과시하며 끝없는 욕망과 허영심을 좇는 현대 사회의 
이면을 담았다. 특히 SNS상에서 보여 주기식 삶을 전시하는 맹목적 
허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6992_4.jpg
 

유물 명칭 인간의 사치

원래 형태 플라스틱 숟가락, 포크

유물 설명 21세기 사람들은 한 번의 식사를 위해 몇 백년간 사라지지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21세기 인류의 사치를 표현한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7278_4.jpg
 






유물 명칭 구석기의 영혼과 불멸의 흐름

원래 형태 플라스틱 페트병

유물 설명 페트병 속 흐르는 물의 보전성을 통해 영생에 대한 허황된 꿈과 

토테미즘에 대한 과한 맹신을 나타낸다.


d087a0e613bb8e19cb00e4bf01c4de99_1783577374_98.jpg
 


유물 명칭 인류의 성수

원래 형태 에너지 음료수 캔
유물 설명 
21세기 인류는 캔 표면의 검은색이 그 속에 든 성수를 
속세로부터 단절시켜, 그것을 고결한 상태로 보존해 준다고 믿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겉을 장식한 수많은 보석은 성수의 고결함과 
진귀함을 암시한다. 당시 인류는 이를 마시면 지적, 신체적, 영적으로 
각성하여 만인을 구원할 힘을 얻게 될 것이라 여겼다. 21세기 인류의 
헛된 희망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수업 일지


데이미언 허스트를 수업에 적용하려 했을 때 처음 떠올린 키워드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죽음을 주제로 한 수업은 자칫 한없이 어둡고 우울해질 우려가 있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밝고 즐겁게 그의 작품에 접근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이번 수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미술사에서 오브제 사용은 뒤샹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극한까지 실험한 인물로 데이미언 허스트를 꼽기도 한다. 그의 오브제 활용 특징으로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충돌과 새로운 서사 창조 등을 들 수 있다. 학생들에게 서사 창조라는 개념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이 수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앞 시간에 뒤샹의 오브제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삶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선정하여 개념 상자로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이전 수업이 개인의 삶과 진정성 있는 서사에 집중했다면, 이번 수업은 그 영역을 21세기 사회와 가상의 서사로 확장하여 진행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각자 준비해 온 폐기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여러 단계를 거치며 폐기물을 선정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가급적 다양한 폐기물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확장해 나갔다. 먼저 폐기물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여 생각나는 대로 작성하게 했다[활동지 1]. 이렇게 작성한 폐기물 중 본인이 직접 가져와 작품으로 제작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선택해 디자인을 구상해 보도록 했다[활동지 2].

마지막으로 세 가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전시 설치까지 고려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진행하게 했다[활동지 3].

폐기물이 준비되면 원래의 상표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표면 전체를 아크릴 물감으로 덮게 했다. 이는 장식이 아니라 은폐를 목적으로 하는 단계이므로 색상 사용은 흰색, 검은색, 금색, 메탈 컬러로 제한했다. 또한 질감 표현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채색 전 젯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물감이 완전히 건조되어 기존 디자인이 완벽히 은폐되면 일지본격적인 장식을 시작하게 했다. 큐빅, 비즈, 레이스, 자개 등의 재료를 제공하여 극단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장식 재료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목공용 본드와 핀셋을 사용해 하나하나 섬세하게 부착하도록 지도했다. 플라스틱 페트병을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거나 각종 폐기물에 큐빅을 붙이는 작업은 대부분의 학생이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기에 학생들은 제작 활동 자체를 즐거워했다.

제작 활동이 끝나면 이를 토대로 [제작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특히 실제 전시 캡션에 들어갈 새로운 서사를 창조하는 부분을 신중하게 고민하여 작성하도록 안내했다. 이후 모든 학생의 작품을 포토 박스에서 촬영해 전자 칠판에 이미지를 띄워 놓고 작품 발표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씩 고르고 그 이유를 작성하게 하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은 버려진 폐기물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완성된 작품을 포토 박스에서 촬영하는 활동을 통해 흔한 쓰레기가 아우라를 지닌 예술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수업 후 변화된 시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학생이 새로운 서사에서 예술의 가치가 창조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특히 “예전에는 예술가들이 그저 의미만 갖다 붙여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번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라는 한 학생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현대 미술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수업의 의미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수업 활동지 및 제작 보고서 다운로드 ☞바로 가기


추천 0 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